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세월 한 켤레

신발장을 정리하다
헌 구두 한 켤레를 끄집어냈다
나를 끌고 다니던 힘 다 빠져나가고
느슨한 시간의 검은 발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는

세상의 딱딱한 바닥
아프도록 찍어대던 뾰쪽한 뒷굽은
어처구니없이 뭉개져버렸다
툭툭 헛발질하다 쓰러진 반질반질한 시절
말라붙어 집밖을 그리워하고 있다

광택 잃은
세월 한 켤레

내가 다녔던 허다한 길을 회상하며
쓴웃음 짓고 있다
잃어버린 길을 찾아
모든 길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는
한 켤레의 추억만
제자리걸음으로 남아
내 발바닥을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