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8일 목요일
임보 시인의 ´사자와 사람´ 외
<탐욕에 관한 시 모음> 임보 시인의 ´사자와 사람´ 외
+ 사자와 사람
배부른 사자는
사냥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먹이를 쌓아 놓고도
투망을 던진다
아직 굶주려 죽은 사자는
지상에 없다
그러나
가장 많이 아사한 동물은
인간이다
사자는
제 몫만 챙기면
나누어 갖도록 두지만
사람은
곳간을 만들어
먹이를 가두기 때문이다
(임보·시인, 1940-)
+ 마음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좇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인생이란
남기려고 하지 말 것
인생은
남기려 한다고 해서
남겨지는 게 아니다
남기려고 하면 오히려
그 남기려는 것 때문에
일그러진 욕망이 된다
인생이란 그저
사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말 아니다
(윤수천·시인, 1942-)
+ 밭 한 뙈기
사람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 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 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권정생·아동문학가, 1937-2007)
+ 장작불 타다
시골장터
제 몸 태우고 있는
장작불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갈길 바빠도
순박한 눈빛 속 끼여 있는 것은
내 가슴 속 나뭇가지 꺾어
툭툭 던져 넣고 있기 때문이다
탐욕의 통나무
허연 재만 남고
그 재, 바람에 날려 흩어지듯
인생도 그렇게 태우고 가는 것이리라
태워라
불꽃 위에 자신을 던져라
가볍게, 말갛게 살고 싶거들랑
뿌리 깊은 욕망 뽑아 태워라
(손희락·시인))
+ 화엄사에 오르다
얼만큼 버려야 저 산처럼 조용할까
얼만큼 멀어져야 저 들처럼 편안해질까
여기까지 오면서도 떨쳐 버리지 못한 욕망
가파르게 흐르는 물에다 떠내려보내도
다 떨쳐내지 못한 뜻 이골 저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처럼 끝없이 쏟아져 내린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면서
삶의 때묻은 발자국을 지우려
먼 산을 보며 오른다
이 길을 다 걸어 오르면 마음은
전나무처럼 곧게 뻗어 오를까
이 길 다 걸어 오르면 마음은
풀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게 될까
그래서 화엄사를 볼 수 있게 될까
(김윤현·시인, 1955-)
+ 나무들을 보라
나무들을 보라
뜨겁다고 불평 불만인 세상 속에서
따뜻함을 위해서 내미는 손
욕심이 과하다 싶거나
티끌이 섞였다 싶으면
장마 속에서 말쑥하게 씻어내는
삶의 현명함을 보라
이물질의 생각들이 손금 사이로
파고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손을 잘라내고
추위에 알몸을 맡기고
고통을 감수하는 숭고한 삶을 보라
(한상숙·시인)
+ 나무는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자꾸 껴입는데
나무는 옷을 한 겹씩 자꾸 벗어 내립니다
다 벗고 더 넓고 높은 하늘을 얻어 입고 섰습니다.
(정완영·시인)
+ 나 늙어 산골에 살면
나 늙어 산골에 살면
이슬처럼 맑은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아무런 욕심 없이…….
비록, 가진 건 없으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나눠주고 받고 싶습니다.
도란도란 얘길 주고받으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산골에서
행복한 마음은
언제나 따스한 햇살처럼
온기를 느끼기에 충분하겠지요?
(강해산·시인)
+ 비울수록 채워지는 향기
일상의 무게를 가늠하며 산다는 건
아직도 욕심이 존재하고 있음이다.
욕망의 늪은 끝을 보이기 싫어하지만
작은 입자를 하나씩 덜어내는 일은
결코 잃음이 아니다.
비우는 일은 곧 채우는 일이다.
꽃 진 자리에 꽃대가 서고
물 나간 자리만큼 넓어지듯
비워지는 자리마다
행복의 향기가 들어와 앉는다.
삶은 이렇듯 날마다
조금씩 잃고 조금씩 비우는 일이다.
덜어낸 만큼 성숙해지고
모자라는 그 자리 채울 때마다
인생의 향기가 넘쳐난다.
(김숙자·시인)
+ 빈 그릇
차랑차랑한 이슬을
동글동글 그대로 한번 담아보고 싶다.
산뜻한 무지개, 그리고
비 그친 뒤의 저 푸른 하늘을
차곡차곡
가슴이 넘치도록
한번 담아보고 싶다.
맑은 새소리
밝은 햇살
…………
…………
그런데
그런데
네가 앉은 그 곳에도
내가 섰는 이 곳에도
흩날리는 먼지.
뿌연 먼지.
나는 오늘도 그릇을 닦는다.
작은 나래 파닥거려
그릇을 닦는다.
담을 것만을 담고 싶은
내 바램의 빈 그릇
나는 오늘도 그릇을 닦는다.
(이무일·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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