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넘치면 흘러야지

넘치면 흘러야지라고 말했다. 들어오는 지하철은
병풍처럼 펼쳐졌다가 접히기를 반복했다.
펼쳐질 때마다 넘치는 사람들을 토해내고
서울인들은 수채구멍으로 쏠리는 샴푸 거품처럼
지하로 빠져들어갔다. 토하고 나면 개운한 듯 즐겁게,
토해버린 것은 더럽게 쳐다보는 습성이 배어버린
서울인들은 겁에 질린 듯 나가는 곳으로 내달음 쳤다.

흘리는 자와 흘려 버려진 자를 분간하는 동안
현기증이 일면서 속이 메스꺼웠다.
노랗게 질려버린 비상등이 놀리듯 깜빡거렸고
밀치고 달아나는 익명의 어깨에 휘청거리면서
나 또한 지상으로 솟구치는 하수도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서울에는 맨홀에 뚜껑이 없다.
그래서 서울인들은 간혹 종로 하수도에 빠졌다가
왕십리의 맨홀에서 솟구치곤 한다.
누구도 서울 탓을 하지 않는다. 넘치면 흘러야지
담겨진 자들의 향연으로 서울 밤은 취했고
잠만 자는 방, 월세 광고지를 외투처럼 껴입고
마누라인 냥 기다리고 선 산등성이 골목길 외등이
면접은 잘 봤냐고 묻는다. 대답 대신에 뒤돌아 본
서울은. 수십만 송이의 노란 국화가 만발해 있다.

<시마을> 2003. 10월의 우수창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