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7일 화요일

첫눈

불 같은 것과
물 같은 것이
한 차례씩 휩쓸고 지나간 뒤에
뼈마디에 새겨진 그 때의 기억이
잊혀지지가 않아서
핏줄기에 스며든 그 때의 흔적이
사라지지가 않아서
흰꽃을 피우기로 했다고
구덩이 깊게 패인
상처를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벼랑을 올라가서 내가 본 것은
눈 덮인 악惡이다
설악雪岳이다
고요하게 잠재워 줄
어머니 품 같은 첫눈,
첫사랑 같기만 하여라
그래서 처음에 내리는 눈은
분명 눈물이 될 것임을 믿는다
가물어 갈라터진 가슴속에 스며들어
뿌리까지 적셔줄
경전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언젠가 다시 동토를 뚫고 나올
힘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서둘러 나도 옷을 벗고
설악의 나무 한 그루로 섰다
내 속에 언제 들어찼는지
악惡 같은 것 쳐부수려고
사랑의 눈으로 악을 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