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눈아, 하시라도 좋아

예고도 없이 내린 눈이랑
볼을 비비고, 양손을 벌려
서로 등을 두드려 주었지
가슴과 가슴을 열어서
호흡을 조절하고 박자도 맞추었지

속 눈썹에 내린 눈은 윙크를 하고
입속으로 뛰어 들어와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데
어느새, 머리카락은 파뿌리로 일어서고
양 어깨는 조팝나무 가지를 짊어지고 있었지

온종일 눈에 팔목을 저당 잡혀서
눈사람이 되고
겨울나무가 되고
눈꽃 상여가 되어 보기도 했지만
한 순간도 싫지는 않았지.
눈아, 네가 너무 좋아서
아마, 앞으로도
귀찮다고 털어내는 일은 없을 거야

눈아, 하시라도 좋아
내리기만 하렴
낮이거나, 밤이거나 어느 새벽
도둑처럼 하얗게 내린다 해도
온몸을 열어
너를 안고 뜨겁게 뒹굴다가
녹고 녹아
투명한 수액으로 흘러
강으로 바다로 스며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