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9일 월요일

숟가락 -이정록-

작은 나무들은 겨울에 큰단다 큰 나무들이 잠시 숨돌리는 사이,
발가락으로 상수리도 굴리며 작은 나무들은 한겨울에 자란단다
네 손등이 트는 것도 살집이 넉넉해지고 마음의 곳간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큰애야, 숟가락도 겨울에 큰단다 이제 동생 숟가락들을 바꿔야겠구나
어른들이 겨울 들녘처럼 숨 고르는 사이, 어린 숟가락들은 생고구마나
무를 긁어 먹으며 겨울밤 고드름처럼 자란단다

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福(복)자가 쓰인 숟가락 세 개를
방바닥에 내놓으신다
저 숟가락이 겨우내 크면 세 자루의 삽이 될 것이다

쌀밥을 퍼 올리는 숟가락처럼 나무들 위에 눈이 소복하다 한 뼘 두 뼘
커 오를 때마다 나뭇가지에서 흰눈이 쏟아지고 홍역인 듯 항아리 손님인 듯
작은 새들이 날아간다

하늘이 다시 한 번 털갈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