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이경임의 ´음악´ 외
<음악에 관한 시 모음> 이경임의 ´음악´ 외
+ 음악
세상에서 아름다운 음악은
망가진 것들에게서 나오네
몸 속에 구멍 뚫린 피리나
철사줄로 꽁꽁 묶인 첼로나, 하프나
속에 바람만 잔뜩 든 북이나
비비 꼬인 호론이나
잎새도, 뿌리도 잘린 채
분칠, 먹칠한 토막뼈투성이 피아노
실은 모두 망가진 것들이네
하면, 나는 아직도
너무 견고하단 말인가?
(이경임·시인, 1963-)
+ 음악
신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언어로서
음악을 만드셨다.
음악은
시인과
작곡가와
조각가에게
영감을 준다.
그것은
고전 속에 나오는
신비한 것들의 의미를
우리의 영혼이 찾도록
우리를 유혹한다.
(칼릴 지브란·레바논계 미국인 시인이며 소설가, 1883-1931)
+ 음악
음악은 인간에게 있어 도덕의 규범이다.
음악은 우리의 심장에 영혼을 불어넣고
생각에 날개를 달아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해준다.
음악은 우리를 슬프게
때로는 기쁘게 하는 인생과 같으며
모든 것의 주문이기도 하다.
음악은 시간의 본질이며
모든 것을 자라게 하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는 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경탄케 하며
영원히 열애토록 한다
(플라톤·그리스 철학자, 기원전 427-347)
+ 음악
음악은 때때로
바다처럼 나를 사로잡는다
나는 출발한다
창백한 별을 향해
자욱한 안개 밑으로
때로는 끝없는 창공 속으로
돛대처럼 부푼 가슴 앞으로 내밀고
밤에 묻혀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나는 탄다
나는 느낀다
신음하는 배의 온갖 정열이 진동함을
순풍과 폭우, 그리고 그 진동이
나를 흔든다
광막한 바다 위에서
음악은 때로는 고요한 바다
내 절망의 거대한 거울
(보들레르·프랑스 시인, 1821-1867)
+ 내 뼈 속에는 악기가
내 손끝 하나 닿지 않아도
울리는 소리
은은한 떨림으로 음계를 누른다
뼈마디 마디마다
비바람 궂은 날을
마른 잎 삭풍을 울리는
계절이 오면
겨울 생소나무 가지 눈덩이 매달 듯
무겁고 무겁게
뼈 속 깊이 저려오는
음울한 안단테 칸타빌레
내 뼈 속에는 악기가 있어
아픔과 슬픔을 조율하는
(조옥동·시인, 충남 부여 출생)
+ 몸관악기
˝당신, 창의력이 너무 늙었어!˝
사장의 반말을 뒤로하고
뒷굽이 닳은 구두가 퇴근한다
낡은 우산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슬픔의 나이를 참으라고 참아야 한다고
처진 어깨를 적시며 다독거린다
낡은 넥타이를 움켜쥔 비바람이
술집에서 술집으로 굴욕을 끌고 다니는
빗물이 들이치는 포장마차 안
술에 젖은 몸이
악보도 연주자도 없이 흐느낀다.
(공광규·시인, 1960-)
+ 우현(雨絃)환상곡
빗줄기는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진 현(絃)이어서
나뭇잎은 수만 개 건반이어서
바람은 손이 안 보이는 연주가여서
간판을 단 건물도 고양이도 웅크려 귀를 세웠는데
가끔 천공을 헤매며 흙 입술로 부는 휘파람 소리
화초들은 몸이 젖어서 아무데나 쓰러지고
수목들은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비바람을 종교처럼 모시며 휘어지는데
오늘은 나도 종교 같은 분에게 젖어 있는데
이 몸에 우주가 헌정하는 우현환상곡.
(공광규·시인, 1960-)
+ 피아노의 말
베토벤이 왔다가고
쇼팽이 왔다가고
숱한 세월이 왔다가도
당신의 손길만은 돌아올 줄 몰라
마음의 문을 열고
아무리 기다려도
당신 아니 오면
난 한낱 무거운 관(棺)
사랑은 비바체
그리움은 되돌이표
내 마음의 박물관엔
거미가 악보를 만듭니다
언젠가 당신 오는 날엔
난 새 노랠 하고
파도처럼 부서지고
드높은 하늘도 맘껏 날 것입니다
(정문규·시인, 전남 화순 출생)
+ 어떤 첼리스트의 노동
연주자는 꽃잎을 불러모으거나
깃털을 불러모으는 마술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므로 음악을 감상하는 일이란
깃털로 만든 이불을 덮고 누워
꽃잎에서 추출한 향기를 맡는 것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방금 전에서야 연주자들 역시
노동자라는 사실을 어이없이 깨달은 것이에요
탄맥(炭脈)을 찾아 끝도 없이 내려가는
광부(鑛夫)라는 거, 삽 한 자루가
전 재산인 저 첼리스트를 보란 말이지요
땀 뚝뚝 흘려대며 필사적으로 놀려대는
저 삽질
어지간해서는 가슴 더워지지 않는
뭇 영혼에게 땔감 대주는 일이란 얼마나
고단하고 숨막히는 작업인가요
진작 땔감 떨어진 무쇠난로처럼
싸늘하게 식어 말없이 웅크리고 앉아있던
내 가슴에 석탄 한 삽을 막 집어넣고 돌아서는
첼리스트의 등허리가 그사이 부쩍 휘었군요
(한혜영·시인, 1954-)
+ 산초나무에게서 듣는 음악
사랑은 얼마나 비열한 소통인가
네 파아란 잎과 향기를 위해 나는
날마다
한 통의 물을 길어 나르며
울타리 밖의 햇살을
너에게 끌어다 주었건만
이파리 사이를 들여다보면
너는 어느새
은밀한 가시를 키우고 있구나.
그러나
사랑은 또한 얼마나 장렬한 소통인가.
네가 너를 지키기 위해
가시를 키우는 동안에도
나는 오로지
너에게 아프게 찔리기 위해
오로지
상처받기 위해서만
너를 사랑했으니.
산초나무여
네 몸에 돋아난
아득한 신열의 잎사귀들이여.
그러니
사랑은 또한 얼마나
열렬한 고독의 음악인가.
(박정대·시인, 196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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