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일 화요일

박봉우의 ´밤하늘´ 외


<별 시모음> 박봉우의 ´밤하늘´ 외

+ 밤하늘

잃은 길도
별들을 보면 안다.

사랑도
별들을 보면 안다.
(박봉우·시인, 1934-1990)
+ 저녁별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다 오는 소년이
저녁별을 쳐다보며 갑니다

빈 배 딸그락거리며 돌아오는 새가 쪼아먹을
들녘에 떨어진 한 알 낱알 같은
저녁별

저녁별을 바라보며
가축의 순한 눈에도 불이 켜집니다

가랑잎처럼 부스럭거리며 눈을 뜨는
풀벌레들을 위해
지상으로 한없이 허리를 구부리는 나무들

들판엔 어둠이
어머니의 밥상포처럼 덮이고
내 손바닥의 거친 핏줄도
풀빛처럼 따스해옵니다

저녁별 돋을 때까지
발에 묻히고 온 흙
이 흙들이
오늘 내 저녁 식량입니다
(이준관·시인, 1949-)
+ 별

멉니다
아련하옵니다
불가사의합니다
신비롭습니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사람이 사는 별이 있을까
하는 순간, 한 눈물이 떠올랐습니다

반짝, 반짝.
(조병화·시인, 1921-2003)
+ 별

호숫가에서 보았지
우르르 은빛으로 쏟아진
별들의 살

스스로 깎아내지 않으면
제 빛 낼 수 없는

하늘 벽에
촘촘히 기대어 서서
저마다 주고받는 눈빛이
유난히 환한 새벽
(조미선·시인 경남 진주 출생)
+ 별

우리
마을에
하나

불이 켜지면

하늘
마을에도
하나

불이 켜진다.

낮에는

보이던
커다란
마을.


지자
하나

별이 켜진다.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 별

하늘을 올려다보기 전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좋은 점을 찾기 전에는
그대의 단점만 보였습니다

세상 보이는 것이
마음먹기 달려 있었습니다

그대의 착한 점만 보일 때까지
당신의 별지기가 되겠습니다
(홍수희·시인)
+ 별

같은 말도 굴릴 때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
한때는 별이
금은金銀의 소리를 냈다. 그 소리
아주 가까이에서 들리는 듯했다.
요즘 서울의 하늘에는 별이 없다.
별은 어디로 숨었나.
나뭇가지에 걸린 그림자처럼
할쑥하게 바래진 누군가의 그 그림자처럼
바람에 흔들리다 흔들리다
제물에 사그러진다.
혓바닥을 칫솔질하는 어디선가
그런 소리가 난다.
지금 나는 별이란 말을 새삼
잇새로 굴리고 있다.
참 오랜만이다.
(김춘수·시인, 1922-2004)
+ 별을 보며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이성선·시인, 1941-2001)
+ 별빛 아래

별이 흘러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왜 한 번도 웃음 짓지 못했던가

별이 빛나는 밤길을 홀로 걸으며
나는 왜 늘 젖은 눈이어야 했던가

가만히 들여다보는 별은 왜
언제나 글썽이는 눈동자인가

별은 스스로 빛나는 별이 아니라
누군가의 빛을 받아 빛나는 존재

먼 우주의 어둠을 뚫고 와
내 심연에 닿아 빛나는 별들

눈물처럼 글썽이는 별빛 아래
나는 왜 젖은 눈으로 미소 짓는가

내 빛이 아닌 빛에 울고
내 안의 빛에 미소 짓고

별이 지나가는 계절의 밤길에서
나는 왜 글썽이는 눈동자로 미소 짓는가
(박노해·시인, 1958-)
+ 별

누가 내 살점 죄다 뜯어
저 하늘에 흩뿌려 놓았나

파들파들 떨고 있는 살점들

누가 저 하늘 죄다 뜯어
지상에 흩뿌려 놓았나

뜯긴 자리마다 빛나는 상처

하늘의 살점인 나와
나의 살점인 별

피 흘리는 것들은 밤새 핏줄이 그립다
(양건섭·시인, 1962-)
+ 별을 바라보라

별을 바라보라
뜨겁게 자기를 불사르는 먼 곳의 별을,
그러나 저 별을 떠나온 빛은 이리도 차갑구나
별을 바라보라
얼음꽃 같은 빛을 뿌리는
저 추억의 불덩어리를

나를 별처럼 불태운 적이 있었다
내 사랑이 나를
별보다 뜨겁게 타오르게 한 시절이 있었다
그후로 내 사랑의 불길로부터 도망쳐
나 세월보다 빠르게 여기까지 왔다
빛의 속도가 그녀를 데려가버린 지금,
그 옛날 나를 태우던 불덩어리만 별빛으로 반짝인다
지상의 연인들이여, 별을 바라보라
눈 시리도록 차갑게 빛나는
저 열애의 흔적을
(유하·시인, 1963-)
+ 별

사람은 누구나
별이지

광활한 우주 속
어느 한 점의 별.

혼자서는 많이
외롭겠지만

저기 나 아닌
또 다른 별이 있어

별들은 서로 잇대어
반짝반짝 빛나지.

나 살아서나
또 죽어서도 영영

이 세상 누군가의 맘속에
작은 빛 하나로 남으리.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헤르만 헤세의 ´구원자´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