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0일 수요일

완독玩讀

꼬리 무척 긴
뱀 같은 장마의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놓고 밖을 내다보며
홀로 앉아 읽어야 할 것이 많다
못 빠져 흔들거리는 의자 위에 올라
까치발로 손을 길게 뻗어서
산마루의 낡은 서재에 꽂힌
책을 꺼내 읽는다
오래된 어떤 나무 하나 손에 들었다
상형문자 표지가 綠의 비에 젖었다
소나기를 맞아 부풀어 오른
나뭇가지의 살이 쉽게 떨어져 나가
한 쪽 넘기기 조차 힘들다
조심스럽게 제 자리에 꽂아 놓고
아득하게 나를 부르는
어떤 꽃 하나 꺼내 읽는다
비단옷에 감싼 몸을 펼치고
허리 중간쯤 읽어내려가노라니
어디서 본 듯 저 안개가 의심스럽다
수상한 저 표절의 글을 덮는다
밖에 어디 책장을 펼치기만 하면
그 속으로 눈길 빨려들어가
한 순간도 놓칠 수 없게
환상의 세계로 가득차 있는 당신
나를 포로로 사로잡는
책 한 권 찾아 서가를 뒤진다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
첫 이야기 같은 당신을 집어 들고
빗길 사이로 걸어가며 玩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