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0일 수요일

만파식적(萬波息笛), 피리를 불다

누군가 나를 가르치려고
가을비 내 머리위로 내리는구나
나 깨달음을 얻으려고
가을비로 내 몸을 가르는구나
저 비 만파식적 피리를 분다
문을 열고 들어보라
나는 나를 부서뜨리고 싶은
깨뜨리고 싶은 하나의 소리일뿐이다
나는 너를 무너뜨리고 싶은
파괴하고 싶은
하나의 피리소리일뿐이다
만파식적 가을비가 나를 눕힌다
만파식적 피리소리 섬을 닮았다
만파식적 피리소리 산을 닮았다
내가 너의 가슴으로 들어가
한 마리 휘몰아치는
용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너의 눈속으로 들어가
한 순간 대나무가 되어 쩍 하며
너의 몸을 갈라놓았으면 한다
내가 너의 가슴을 열고
소리를 깊이 꽂아놓으련다
내가 너의 눈을 열고
비수를 하나 꽂아 놓으련다
만파식적 만파식적 피리를 불며
가을비가 내린다
섬이 갈라진다 나는 피리를 분다
산이 갈라진다 나는 피리를 분다
꽃이 갈라진다 나무가 갈라진다
나는 피리를 분다
가을비 너무 아프다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으로
나를 가르고 지상을 가르고
세상을 가르는 만파식적
만파식적 가을비에 젖은 내몸에서
만파식적 피리소리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