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4일 월요일

착한 마음을 노래하는 동시 모음


<착한 마음을 노래하는 동시 모음>

이혜영 시인의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외
+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내게로 웃으며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그게 낯선 강아지라도
꼭 안아 줄 거야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있다면
가랑잎이라 해도
잠시 집어들고 살펴볼 테야
혹시, 시의 모서리가 있을지 몰라

빈 과자 봉지가
내게 달려온다 해도
나는 모른 척할 수 없을 거야
내게 온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내게로 마구, 달려오는 것이
찬바람이라 해도
난 두 팔 벌려 맞아 줄 거야
잠시나마 따뜻하라고
(이혜영·아동문학가)
+ 키 작은 애

키 작은 애 손을 쥐면
내 손이 좇아서
조그매지려 한다.

도란도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내 귀는 솔긋
키 작은 애 가까이로
기울고,

손을 잡고 걸을 때면
키를 한껏 낮추어 걷게 된다.
그 애가 보는 높이만큼서
꽃이든지
풀이든지
보고 싶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 길을 가다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만히 서 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 보고 싶다.
(이준관·시인, 1949-)
+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서정홍·시인, 1958-)
+ 김밥 아줌마

김밥을 싸다 말고
자꾸만 길가를 기웃거리던
김밥아줌마
하얀 쌀밥 한 주먹
크게 쥐어 휘익 던지자

금세 비둘기 한 마리 날아와
콕콕 찍어먹다 말고
포르르 날아가
어느새 친구들을 불러 와
서로 부리를 맞대고 맛있게
콕콕, 콕콕콕

장마가 길면
작은 새들은 배곯기 일쑤라며
걱정하던 김밥아줌마
그때서야 흐뭇한 얼굴로
김밥을 돌돌 만다.
(박예분·아동문학가)
+ 몰랐지?

산딸기가
흙 튀는 낮은 곳에
몰래 숨어
익는 이유가 있지.

사람들 눈을 피해
꼭꼭 숨어
익는 이유가 있지.

키 작고 힘없는
약한 개미들
느릿느릿
느림보 달팽이들

느리고, 힘없고,
여리고 약한 애들까지
다 나누고 살아야 한다는 것.
(양인숙·아동문학가)
+ 아침 버스에서

추운 날 아침
아침 버스의
차가운 좌석에 앉다가

뜻밖에도
따스하게 밀려오는
그 누구인가의 체온을 느낀다.

이 자리에 앉았다가
따스한 체온만을 남겨 두고
내린 사람은 누구일까.

추운 겨울의
한 모퉁이를 녹여주는
이 좌석에 앉아

나는
다음 사람을 위해
더 따스한 자리를 남겨 주고 싶었다.
(권영상·아동문학가)
+ 너도 알 거야

˝왜 한 구멍에 콩을 세 알씩 심어요?˝
흙을 다독거리는 할머니께 물었다.
˝한 알은 날짐승 주고
또 한 알은 들짐승 먹이고
남은 한 알은 너 주려고 그런단다.˝

할머니는
콩밭 군데군데 수수도 심으셨지.
˝수수는 왜 심어요?˝
할머니는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참새는
콩밭을 한 바퀴 돌고는
―콩은 너무 커
콩밭을 두 바퀴 돌고나서는
―수수 알갱이는 먹기 좋은데

가을이 되어서야 알았지.
주둥이가 작은 참새까지도 생각하신
할머니 마음.
(이성자·아동문학가)
+ 짐수레

짐수레가 간다.
오르막길에,

수레 끄는 아저씨 등이
땀에 흠뻑 젖었다.

가만히 다가가서
수레를 밀었다.

아저씨가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나는 더 힘껏 밀었다.
(김종상·아동문학가)
+ 가로수

어깨를 건드린다 아는 체하며
돌아보니 살며시 등을 기대는 가로수.
´쉬었다 가렴.´
푸른 물소리로 말을 건넨다.
그렇구나
숱하게 이 길을 오갈 때마다
나무는 내게 눈길을 주고 있었구나.
등으로 전해지는 물소리.
하늘엔 땡볕이 타고 있는데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무는
푸른 그늘을 만들며.
(김재수·아동문학가)
+ 눈 오는 날

논밭들도
누가 더 넓은가
나누기를 멈추었다.

도로들도
누가 더 긴지
재보기를 그만 두었다.

예쁜 색 자랑하던
지붕들도
뽐내기를 그쳤다.

모두가
욕심을 버린
하얗게 눈이 오는 날.
(이문희·시인)
+ 육교가 헐리면

옷걸이, 면봉, 파리채, 먼지떨이,
수세미, 우산꽂이, 장독덮개, 효자손 .....

버젓하게 걸어놓은 간판은 없어도
단돈 천원으로도 푸짐한
육교 위 엄마 가게

온종일
해님이 내려와 놀고
가끔씩 바람이 제 맘대로 들랑대는
가게 앞에 앉아
뜨개질도 하고 신문도 보는 엄마

이제 어쩌나
육교가 헐린다는데......

학교 가는 길

새로 생긴 횡단보도를 훌쩍 건너면 되는데

엄마 가게는
엄마 가게는.......
(한상순·아동문학가)
+ 열어 두어

가느다란 바늘에
작은 창 하나 열려 있다

열어 둔 창으로
야윈 실 하나 들어와
바늘과 손잡고 일을 한다

길 잃은 단추
데려다 주고
양말 상처
치료해 준다.
(정갑숙·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강지인 시인의 ´할아버지 연장통´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