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아주 아주 오랜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우는 그런 시절에
산속 깊은 곳에 중이 하나 살았는데요
암자 하나 지어놓고
부처님 앞에서 불경을 외우는 척
몸도 마음도 수양하는 척
도를 닦는 척 중생을 제도하는 척 하였는데요
알고 보니 지나가는 동네 개 잡아 먹고
계곡에 가서 피래미 물고기 잡아먹고
밤에는 몰래 동동주 술 먹으러
기생 집에 가서 곤드레만드레 매일 술에 취해 있고요
그렇게 그렇게 저렇게 저렇게 살고 있었는데요
하루는 높은 벼슬하는 양반 집
아름다운 부인이 절에 와서 시주하고는
그 중에게 한 말씀 얻어가려고
부처 내려다 보이는 법당에 앉아 있었는데요
그 중이 오랜간만에 장삼 입고 목탁 들고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니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가
깜짝 놀라며 목탁도 떨어뜨리고
불경도 다 잊어버리고
부처님도 다 잊어버리고
빡빡 깍인 머리만 더듬으며 눈을 감고 있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 속에는
여인의 고운 자태만 들어오고
향기로운 내음새가 육체를 자극하는데
불도도 저리가라 중생의 제도도 저리가라
오만가지 백팔번뇌가 머리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지라
하긴 그 중에게 무슨 번뇌가 있었으리오마는
중얼중얼 대충대충 얼렁뚱땅 그럭저럭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른 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만
하염없이 염불을 외우는 척하고는
살며시 고개 돌려 아름다운 양반 집 그 여인과
눈이 마주 쳤는데요 하필이면
그 여인이 알듯 모를듯 살며시 미소를 지었는데요
아하, 이것이 천년이나 가는 사랑의 시작인 줄
그 중은 몰랐던 거지요
집에 돌아간 그 여인의 고운 미소를 잊을 수가 없어서
어느날 그 중은 바랑 하나 매고
그 여인을 찾아 나서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가까이도 하지 못할 높은 양반 집 부인이라
상사병에 걸려 속만 타다가 애만 끓다가
그집 앞에 한 오백년 서 있는
팽나무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다음 또 한 오백년 후에 다시 태어나거든
그 여인 만나서 삶과 죽음을 같이 하기로 맹세하였다고
하는데요 내가 그집에 가서 보니
문 앞에 팽나무가 있긴 있더라구요
내가 그 중이 아니었던가 궁금하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