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1일 월요일

속옷

한길 좌판대에 놓인
사과가 알몸같이 빛난다
세상이 열매처럼 달콤하였으니
원래의 죄가 크다
입속으로 꿀꺽 삼켰으니
지은 죄가 많다
두터운 갑옷 같은
껍질을 가지지 못하여
떨어진 나뭇잎으로 살을 가렸다
속옷도 없이 밖으로 나왔으니
부끄러운 일 밖에 없다
벌거벗은 줄 몰랐던 낙원을 잊고
속옷 입은 혼이 썩어간다
입만 거칠어진다
손톱을 치켜 세우고
먹이를 노리는 눈이 매섭다
속은 병들어 깨졌고
옷은 쇠처럼 무겁고 단단해졌다
은밀한 속살도
낮의 해에게, 밤의 달에게
다 가져가라고 내주었으니
내 손 안에 사과 두 알이 열렸다
오른 손에는 배냇저고리 속의
고운 살 같은
왼 손에는 수의 속의 말라 비틀어진
살 같은 사과가 있어서
껍질도 벗기지 않고 먹는다
속옷도 없이 지내온 생이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