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5일 월요일

멀리 있는 연인에게


=김재진=
바깥으로 나오면
건물의 입구에 앉아 있거나 비스듬히 기댄채
찢어진 바지 더 찢거나 담배피고 있는 여자.

편지를 보냈어요 산성비에 젖어
당신의 주소가 흐려졌어요.

우체통을 본다 낡은 추억의, 붉어지는 그림자.
뒤뚱거리는 육교 밑으로 즐거운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는 아무도 기다릴 사람이 없는 것을 안다.

조명 아래는 하루살이 떼처럼
붐비는 사람들,
붐비며 기어코 잊으려 하는 사람들,
한줄의 기타, 몇 가닥으로 번지는 그리움 뜯어내며
그 여자는 노래한다 부드러운 목젖 떨리며,
그 여자가 말하는 그리움을 나는
모른다.
멀리 있는 연인에게 아무것 보낼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내 속에 남아있는 한 방울의 기다림도 짜내버린다.

가령 누가
어떻게 말한다거나, 노래한다거나,
누군가 죽는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은행나무 아래서 나는
은행잎으로 어지러운 길들이
인간의 꿈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을 본다.

은행나무 사이에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당신을 생각해요.

그래, 가령 누가 누구를 생각한다 이건
그리움관 다르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시간이 가고,
시간의 사이에 납작하게 낀 사람들이 나사못처럼
건물 속에 박혀있다.

또 한 통의 청구서,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이름들을 나는
수첩가득 적어 넣기도 한다.
죽은 가수를 추모하는 콘서트가 열리고, 시간이
멀리 있는 연인의 우편함을 기웃거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