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8일 화요일

이병 엄마의 겨울 연가

이병 엄마의 겨울 연가

희망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나는
당연히 병역 면제입니다.

그러나
희망한국에서 여신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여자로 태어나 아들을 둔 나는
아들과 함께
반드시 병역을 필해야 합니다.

왜 하필 TV 드라마 제목이 금쪽 같은 내 새끼냐고
중얼거리며
그 동안 무심히 지나쳐 보던
‘청춘 신고합니다’를 부지런히 챙겨 보게 된 나는
솜털 보송보송한 새내기 이병 엄마랍니다.

금쪽 같은 내 새끼
내 아들 가브리엘...
낯선 곳으로 배치 받아 떠나면서
역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공중전화라고
기차 시간이 조금 남아 전화를 한다구요.
오랜만에 세상 구경 하니까 어떠냐 물었더니...그냥 웃네요.

눈부신 청춘을 네모나게 각 잡아 우겨 넣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차곡차곡 챙겨 넣은
묵직하고 서글픈 군용백 어깨에 메고
오가는 사람들로 부산스런 역전에서
이제는 휴대전화에 밀려 점점 사라져간다는
공중전화부스에 매달려 있을
새내게 이병 아들의 모습이
그렁그렁 떠올라 목이 메입니다.

이제 시간이 되어 떠나야 한다면서 덧붙이던
엄마 건강해야 해,
나를 위해서라도 건강해...
간절한 그 목소리가
하루 종일 벌떼처럼 잉잉대며 가슴을 헤집고 다닙니다.

아들놈 칫솔이 칫솔꽂이에서 웃고 있고
아들놈 수저는 엄마 아빠 수저랑 함께 수저통에서 반짝이고
아들놈 운동화도 신발장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데
알맹이만 없네요.
알맹이가 빠져나가 휑한 아들의 빈 방에서
우두커니 아들놈 사진을 바라며 묻습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청춘이 눈부신 만큼
꼭 그만큼 깊숙한 우울에 시달리는
아들놈에게 듬뿍 건네주고 싶은
금빛 햇살 쏟아져 들어오는 거실바닥에 주저앉아
아들 이름이 새겨진 천 조각을 어루만져 봅니다.

입영날짜 받아놓고
아침이면 일찍 얼어나는 연습을 했지요.
저녁이면 한강변에 나가 달리는 연습도 하구요.
양말이랑 속옷 빨래 연습도 시키고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거실에 마주앉아
함께 바느질도 했습니다.
바늘에 실도 꿰어보고
이름 새기는 연습도 해 보구요.
단추 달기에 명찰 다는 연습도 시켜보았습니다.

말없이 바느질 연습을 하던 아들놈 얼굴이 떠오르네요.
그 녀석의 비뚤한 바느질 자국이 남아 있는 천 조각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을 건넵니다.

아들아,
너는 지금 혼자 여행을 하고 있는 거야.
혼자 사막을 건너는 법을 배우고 있는 거란다.
그건 아무도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거지.
혼자 느끼고
혼자 깨닫고
혼자 배워가야 한단다.
사막이라 물은 귀하겠지만
하늘에 별들은 여전히 총총할 거야.
알고 있지?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
그림자처럼 아빠와 엄마가 너를 따르고 있으니...
그리고 네가 가는 그곳은 낯선 곳이 아니란다.
엄마의 고향땅 바로 곁이니
엄마 품처럼 포근할 거야.

아들놈 생각에 하루하루 몸살을 앓고 있는
새내기 이병 엄마의 소박한 꿈은
금쪽 같은 내 새끼가 어서 일병이 되어
나도 함께 일병 엄마가 되는 것이랍니다.

출처 : 좋은생각, 노은의 ′이병 엄마의 편지′ 중에서
http://www.positive.co.kr/home/contents/board/list.asp?num=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