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1일 토요일

느티나무 타불 -임영조-

곡우 지나 입하로 가는 동구 밖
오백 년을 넘겨 산 느티나무가
아직도 풍채 참 우람하시다
새로 펴는 양산처럼 綠綠하시다

이제 막 어디로 나설 참인지
하늘로 빗어 올린 푸른 머리칼
무쓰를 바른 듯 나붓나붓 윤나는
싱그러운 주책이 정정하시다

그런데 이런! 다시 보니
꺼뭇한 앙가슴이 동굴처럼 허하다
얼마나 오래 속태우며 살았는지
정말 마음 비운 노익장이다
배알까지 빼주고 지은 절 한 칸
스스로 空이 되는 적멸궁이다

저 늙은 느티나무는 아마
어느 날 느닷없이 날벼락 맞고
문득 깨쳤으리라 몸을 비웠으리라
중심을 잡기 위해 무게를 덜고
부질없는 노욕을 버렸으리라

속 비우고 여생을 지탱하는 힘
마지막 안간힘이 곧 나무아미타불
이승에서 이름을 완성하는 것이리
이제는 저승의 명부에도 빠졌을
저 늙은 느티나무는 이 다음
죽어서도 느티나무 陀佛이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