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0일 월요일

물을 밟다

길 뚫린 청계천에
득달같이 달려가서
물을 밟는다
벌레 갉아 먹은 집을 뛰쳐나온
가슴을 밟는다
그 속의 마음을 밟는다
이곳이 휴전선 가까이
동막골 계곡이다
이곳이 지리산 천왕봉 절벽이다
이곳이 제주도 천지연 폭포다
낡고 병들어 운신조차 힘든
바위 같은 세상
장마비로
휘몰아 다 쓸어버려라 하고
오래 묵어 삭고 곰팡이 핀
고목 같은 세상
천둥번개로
정수리 갈겨 주어라 하고
이곳이 최후 방어로 피 흘렸던
낙동강이고
이곳이 일사 후퇴에 눈물 흘렸던
압록강이고
이곳이 지하 공장에서 땀 흘렸던
한강이다
그때 떨어져 나온
살들이 뼈들이 발에 밟힌다
썩어 문드러지지도 않고
불 태워 없앨 수도 없어
날이 갈수록
더욱 푸릇푸릇해지는 풀 같은
역사가 눈에 콱 들어와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