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폭우였던 적이 있었다
도랑에서부터 개울에서부터
쿨렁 쿨렁 뛰쳐나가
시냇가를 덮치고 강둑을 치며
길 움푹 파헤치며 흘러간 적 있었다
번뇌로 축축한 진흙탕 길이었다
만행으로 누렇게 뜬 홍수의 길이었다
나 때문에
지붕 내려앉고 뿌리 뽑혀지고
가슴 아픈 것들 많았으리라
나로 인해
기둥 굽어지고 벽에 금이 가고
제단에 무릎 꿇은 것들 많았으리라
저 물길 막아보겠다고
바위 높게 쌓아놓은 걸 보았다
무쇠로 문 닫아놓은 걸 보았다
물 가는 길이
비틀거리는 生 같아서
제멋대로 굽이쳐 흐르는 것이다
차고 넘치고 휩쓸어버린다
물길 막아서는
바위는 순식간에 모래가 되고
쇠는 단번에 가라앉아 버렸으므로
그냥 물처럼 흘러가게 두었다
제 갈 길 알고 가는 것이라
물 위에 몸을 눕히면
구원처럼 당신에게 가 닿겠다
마침내 평온한 바다의 품에서
눈길 마주치며 숨을 거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