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7일 목요일

홍수희의 ´9월´ 외


<9월 시 모음> 홍수희의 ´9월´ 외

+ 9월

소국(小菊)을 안고 집으로 오네
꽃잎마다 숨어 있는 가을,
샛노란 그 입술에 얼굴 묻으면
담쟁이덩굴 옆에 서 계시던 하느님
그분의 옷자락도 보일 듯 하네
(홍수희·시인)
+ 9월이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
대추는 대추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
너는
내 가슴속에 들어와 익는다.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서
서서히 물러가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를 떠나야 하고
너는
내 가슴속을 떠나야 한다
(나태주·시인, 1945-)
+ 9월

태풍이 쓸고 간 산야에
무너지게 신열이 오른다

모래알로 씹히는 바람을 맞으며
쓴 알약 같은 햇살을 삼킨다

그래, 이래야 계절이 바뀌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한 계절이 가는데
온몸 열꽃 피는 몸살기가 없을까

날마다
짧아지는 해 따라
바삭바삭 하루가 말라간다
(목필균·시인)
+ 나의 9월은

나무들의 하늘이, 하늘로
하늘로만 뻗어가고
반백의 노을을 보며
나의 9월은
하늘 가슴 깊숙이
깊은 사랑을 갈무리한다.

서두르지 않는 한결같은 걸음으로
아직 지쳐
쓰러지지 못하는 9월
이제는
잊으며 살아야 할 때
자신의 뒷모습을 정리하며
오랜 바램
알알이 영글어
뒤돌아보아도 보기 좋은 계절까지

내 영혼 어떤 모습으로 영그나?
순간 변하는
조화롭지 못한 얼굴이지만
하늘 열매를 달고
보듬으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서정윤·시인, 1957-)
+ 9월의 약속

산이 그냥 산이지 않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면
떡갈나무 잎으로 커다란 얼굴을 만들어
우리는 서로서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손내밀면 잡을만한 거리까지도 좋고
팔을 쭉 내밀어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도 좋을 거야

가슴을 환히 드러내면 알지 못했던 진실함들이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산울림이 되고 아름다운 정열이 되어
우리는 곱고 아름다운 사랑들을 맘껏 눈에 담겠지

손잡자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우리는
9월이 만들어놓은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가 되고
산울림이 가슴에서 잔잔한 울림이 되어
하늘 가득히 피어오를 변치 않는 하나를 위해! 우리
(오광수·시인, 1953-)
+ 9월이 오면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안도현·시인, 1961-)
+ 9월에 꿈꾸는 사랑

날개는 지쳐도
하늘을 보면 다시 날고 싶습니다
생각을 품으면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다지면 용기가 생기겠지요

단 한 번 주어지는 인생이라는 길
시작이 반이라고는 하지만
끝까지 걷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심어놓은 한 송이, 한 송이의 꿈
어느 들녘에서, 지금쯤
어떤 빛깔로 익어가고 있을까요
가슴은 온통 하늘빛으로 고운데

낮아지는 만큼 깊어지는 9월
한층 겸허한 모습으로
내 아름다운 삶이여! 훗날
알알이 탐스런 기쁨의 열매로 오십시오
(이채·시인)
+ 9월의 기도

나의 기도가
가을의 향기를 담아내는
국화이게 하소서

살아있는 날들을 위하여
날마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한쪽 날개를 베고 자는
고독한 영혼을 감싸도록
따스한 향기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시작이
당신이 계시는 사랑의 나라로
가는 길목이게 하소서

세상에 머문 인생을 묶어
당신의 말씀 위에 띄우고
넘치는 기쁨으로 비상하는 새
천상을 나는 날개이게 하소서

나의 믿음이
가슴에 어리는 강물이 되어
수줍게 흐르는 생명이게 하소서

가슴속에 흐르는 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로
마른 뿌리를 적시게 하시고
당신의 그늘 아래 숨쉬게 하옵소서

나의 일생이
당신의 손끝으로 집으시는
맥박으로 뛰게 하소서

나는 당신이 택한 그릇
복음의 사슬로 묶어
엘리야의 산 위에
겸손으로 오르게 하옵소서
(문혜숙·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김상배의 ´낮술´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