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6일 일요일

최명란의 ´사진을 보며´ 외


<사진 시 모음> 최명란의 ´사진을 보며´ 외

+ 사진을 보며

멀리 계신 당신이
그리운 날입니다
당신이 남기고 간 사진들
날마다 어루만져 찍힌 지문 사이로
당신이 살아서 툭툭
걸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최명란·시인, 1963-)
+ 할머니 사진

평생 농사일로
살아오신 할머니

관절염
신경통
위장병

만날 아프다고
약 드시면서

액자 속 할머니는
만날 웃으신다.

고질병도 속내도
찍히지 않는 사진처럼
할머니 속병도
사라지면 좋겠다.
(박승우·아동문학가, 1961-)
+ 가족사진

빗소리가 가늘게
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날,
날개 달린 생각들이
밤늦도록 들락거리고

나와 함께, 방안에서
축축하게 눅지는 것들
그 중에서도 유독,
벽에 걸린 식구들 사진 몇 장이
두런두런 깨어나
소복이 모여, 나를 쳐다본다

내가 그들을 깨웠을까
쳐다보는 그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나
(신석종·시인, 1958-)
+ 가족 사진

혼자
밤일을 하다
문득 가족 사진을 보게 되면
슬퍼질 때가 있다.

지난여름
아쉬웠던 나들이처럼
우리들은
따가운 풀밭으로 돋아나
거기 웃으며
그냥 젊어 있는데

어느새 不感의 겨울
이렇게 성에 끼는 새벽을
가슴 저리게 하는
한 방울의 작은 얼룩.
(김종원·시인, 1949-)
+ 사진 속의 나를 보며

저 사진 속의
말없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지금 이 순간
이 사진을 보고 있는 나는 누구입니까
그때는 거기 있었지만
지금은 여기에 없는 사람

지금은 여기에 있지만
다시는 거기에 갈 수 없는 사람
침묵에 갇힌 저 사람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나를 떠나
얼마나 먼 시간을 돌고 왔기에
나의 진실은 말라만 가고
나의 허상은 불어만 가고

얼마나 먼 시간을 떠나왔기에
너한테 소리쳐 갈 수 없고
너한테 온기를 전할 수 없고

그때는 거기에 있었지만
지금은 여기에 없는 사람
네 안에 나를 키울 수 없는 사람
(정군수·시인, 1945-)
+ 흑백사진

울퉁불퉁한
시골집 벽에 걸린
낡은 흑백사진

나란히 앉은
젊은 새색시
멋있는 신사
저게 누구인가

아버지 어머니도
저렇게 젊은 시절이 있었나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 어머니는
늙고 꼬부라진 모습뿐인데

세월은 가고
세월 따라 사람은 가고 없어도
흑백사진 속의 그 모습
변함이 없구나

물끄러미 올려다본 순간
다정한 미소로 답하시는
아버지 어머니.
(이문조·시인)
+ 그 여자의 낡은 사진

서랍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그 여자의 낡은 사진

귀퉁이가
다 닳은
구름 한 조각

비 묻은 귀밑머리 몇 가닥과
졸음에 겨운 희미한 쌍꺼풀과
그 여자의 얇은 여름 블라우스 점점이 박힌
푸르고 붉은 꽃무늬
가랑비 속삭이던 처마 밑 그 저녁의 일들일랑은
몇 구절 나지막한 휘파람으로나마 불러보든지.

돌아온다는 기약 같은 건 없었다네
(구름에 무슨 기약이 있겠나) 세상의 모든 기약이란
떠나가는 배의 희고 둥근 돛처럼
잠에서 덜 깨어 바라보는
목련꽃 가득한 새벽녘의 마당처럼
참으로 허무하고
또 슬픈 것임을
내 어찌 몰랐을까나

구름은 다 데리고 간다네
다 데리고 구름은
허공에 걸린 새소리를 지나
나울나울 목련나무 가지를 지나 구름은
아무 말 없이 스윽 팔짱을 한 번을 껴보고서는
창문을 넘어간다네

내 어찌 모를까나
오늘은 밤새 새가 울고
그 새소리에 목련이
다 질 것을
내 어찌 모를까나
(최갑수·시인, 1973-)
+ 사진첩(寫眞帖)

책장 한 칸이 앨범으로 가득 찼다
그 앨범 속에 나의 인생 역사가
각가지 모양으로 찍혀져 있다
흔적 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지만
사진 속에는 멈춰진 시간 속에
그때마다의 나의 삶이
온갖 모습들로 살아 숨쉰다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 졸업사진은
6.25 전쟁중인 1951.6월에 찍었다
그 사진을 보면 해방당시부터
6.25 전쟁을 겪으며 졸업할 때까지의
생생한 모습들이 파노라마 되어
찡한 기억으로 가슴을 때린다

초가로 된 고향마을 사진은
월남전 때 귀국하면서 처음
사 가지고 온 카메라로 찍은 것인데
집이며 골목마다 진한 향수에 젖게 한다

그때부터 청년 중년 장년시절을 거쳐
耳順을 훨씬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세월들이 사진 속에 압축되어
걸어온 날의 생생한 추억들을 말한다

언젠가 내가 이 세상 떠나는 날엔
불태워질 사진들이지만 내가 살 동안은
소중하게 간직할 나만의 보물들이다
(운경 김선옥·시인)
+ 백두산 사진을 보며

그냥은 가지 않으리라
이대로, 분단의 사슬을 둔 채로
남의 땅으로 돌고 돌아
훔치듯
그렇게는 가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끝끝내
내 평생에 단 한 번을
가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렇게는 가지 않으리라

한라에서 바라보는 백두의
저 서늘한 눈빛
우리가 그 눈빛을 닮아
곧은길로만 가리라

곧장 내달아 가리라
분단의 오랜 고통 가신 뒤에야
하나된 조국의 풋풋한 살 냄새 맡으며
훠어이 훠어이
통곡으로 가리라
(김시천·시인, 1956-)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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