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외로움 자체였다.
나는 너를 위해 종이 될 수 있었지만
만날 때마다
가슴에 구멍이 생겼다.
구멍마다 밀려드는 바람
씻어낼 수 없는 젊은 날의 비애를
추억이라 부르지 말자.
우리는 르네상스에서 베토벤을 만났다.
드볼작을 만나 보헤미안의 집시처럼 떠돌았다.
거리에서 비틀즈를 만났고
죤 바에스, 폴 사이먼과 함께 방황하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너의 발등에서 추락했다.
그러나 이별은 이미 너의 시간표에 있었다.
너의 표정마다 숨겨진
불길한 예감들을 애써 외면했지만
이별은 첫사랑 교과서 마지막 페이지에 들어 있었다.
그해 겨울
군밤장수의 외투깃으로 파고드는 바람보다
더 차가운 시선을 남긴 채
너는 떠났다.
나는 베트남의 패전을 지켜보듯
너를 바라보며
황량한 구세군의 자선남비 옆에서
방울소리를 딸랑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