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6일 수요일

이삿짐

담보도 없이 잠시
집 빌려 삭월세 살았다
이제 그만 나가란다
주인이 이사를 하란다
작은 방 하나에
부엌과 뒷간 딸린 몸뚱어리
문을 열고 짐을 싼다
가슴을 열어젖히자
제대로 빨지도 않고
장농에 마구 던져 놓았던
옷이며 이불이며 잡다한 것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온다
굳게 다문 입을 뜯어내니
찬장 붙여놓았던 벽 사이로
바퀴벌레가 우굴거린다
뒷간은 치우지 않고 두어서
치질로 항문이 늘 아프다
머리를 빗질하는데
책장에는 먼지가 가득하고
녹이 슨 형광등은
불도 들어 오지 않는다
잠간 빌려 쓴 몸이라고
청소 한 번 한 적 없다
가져갈 이삿짐이 하나 없다
다 버려야 할 쓰레기뿐이다
빈터에 쌓아 불 지르고
그냥 맨몸으로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