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일 일요일

나태주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외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 모음> 나태주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외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나태주·시인, 1945-)
+ 기도의 편지

하느님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합니다.

하늘 가득 먹구름으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건 당신의 일이지만
그 빗방울에 젖는 어린 화분을
처마 밑으로 옮기는 것은 나의 일,

하늘에 그려지는 천둥과 번개로
당신은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만
그 아래 떨고 있는 어린아이를
안고 보듬으며 나는
아빠가 있다는 것으로
달랩니다.

당신의 일은 모두가 옳습니다만
우선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쓸쓸함으로 외로워하는
아직 어린 영혼을 위해
나는 쓰여지고 싶어요.

어쩌면, 나는 우표처럼 살고 싶어요
꼭 필요한 눈빛을 위해
누군가의 마음 위에 붙지만
도착하면 쓸모 다하고 버려지는 우표처럼
나도 누군가의 영혼을
당신께로 보내는 작은 표시가
되고 싶음은
아직도 욕심이 많음인가요.
(서정윤·시인, 1957-)
+ 하나님 놀다 가세요

하나님 거기서 화내며 잔뜩 부어 있지 마세요
오늘따라 뭉게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들판은 파랑물이 들고
염소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데
정 그렇다면 하나님 이쪽으로 내려오세요
풀 뜯고 노는 염소들과 섞이세요
염소들의 살랑살랑 나부끼는 거룩한 수염이랑
살랑살랑 나부끼는 뿔이랑
옷 하얗게 입고
어쩌면 하나님 당신하고 하도 닮아서
누가 염소인지 하나님인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놀다 가세요 뿔도 서로 부딪치세요.
(신현정·시인, 1948-2009)
+ 어찌할까요 하느님

오늘도 새벽보다 부지런히 새보다 착하게 살았습니다.
풀 속에 개구리 한 마리 밟지 않았구요. 징그런 뱀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배추밭에 벌레한테는 얼른 먹고 나비가 되거라 그렇게 살았습니다.
지금은 수요일 밤 변소에 앉아 교회 종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가야 하는데, 교회에 가야 하는데, 저는 똥이 나오지 않습니다.
버려야 할 걸 버리지 못하고 어찌 하느님 앞에 두 손 모으겠습니까.
아무리 힘주어도 나오지 않는 그것이 똥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용서하세요 하느님. 오늘도 교회에 못 갈 것 같습니다.
제겐 급한 일이 똥을 누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긴급 사항입니다.
(김종구·시인, 1957-)
+ 아침 인사

아! 잘 잤다.
하느님도 잘 잤어요?
어젯밤에 뭐라고 기도했더라?
생각 안 나도
꼭 들어주셔야 해요.
(이옥용·아동문학가)
+ 하느님의 실수

하느님!
빨강, 주황, 노랑, 분홍 장미는
다 있는데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 장미는
왜 안 만드셨어요?
(송예진·서울 계남초등학교 3학년)
* 2004년 제3회 한국 어린이 시문학상 수상작품집
+ 부탁합니다

하느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게 해 주세요.

그래야
손뼉이 쳐지잖아요.
잘한다고 맞장구도 쳐주잖아요.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별똥별

하늘에서
반짝
단추 하나가
떨어졌어요.

하느님
무슨 일이 있었나요?

누가 서로
멱살잡이라도 했나요?

땅에서
죄 지은 사람이
그리로 가서
싸움을 했나요?

말려 주셔요
하느님,
이 땅의 싸움도요.
(박두순·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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