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2일 목요일

안악 3호

돌문을 열어 젖히고
두루마리 벽을 펼쳐놓으니
한 편의 서사시가 들려온다
고구려는 모두 벽이다
벽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어느 저택의 상 차리는 아낙네가
부엌도 고깃간도 용두레우물도
벽 속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마구간과 외양간과 차고는
시종이 벽으로 자리를 옮겼다
집 바깥의 큰 길에서는
기수와 악대를 앞세운 기마 행렬이
모퉁이 돌자마자
순식간에 벽 속으로 사라져갔다
무사들이 벽에 붙어서
여태 수박手搏을 하며 힘을 겨루고
벽으로 휘장을 친 방안에서
덧관을 쓴 주인의 명을 받고
누군가 묵서를 벽에 쓰고 있다
좌우에 시녀를 들이고
고계운환의 머리를 튼
벽장 속 여인이 미소를 짓자
천장벽에서 붉은 선묘의 연꽃이 피었다
두런두런 들려오는 고구려의
벽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어느 가문家門이 지어놓은
장편의 시다
나도 벽으로 들어가
무덤 같은 나를 꺼내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