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4일 일요일

독배를 들다

독 같은 시절이라
큼지막한 독사발을 받았다
한 번도 열어 본 적 없는
퍼렇게 녹슬은 문고리를 잡았더니
독 같은 유혹의 향기가 느껴졌다
독이 오른 뱀을 밟았다
독이 든 사과를 건네 받았다
독에게 목을 물렸다
아무도 들지 않는 독의 잔을
때로는 마실 이유가 있었다
마음에 절대적으로 붙어
몸 더럽히는 생살을 없애야 하므로
한 잔씩 내려주는
사약을 받아 마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동굴 속에 숨거나
저 밑의 섬으로 피란가지 마라
독배를 든다는 것은
적이 된 나와 맞서 싸우기 위해
내 몸에 칼을 드는 것이다
나를 스스로 죽이고
그 위에 무덤을 만드는 것이다
빈 항아리 같은 몸 가득
독만 남았으니
독으로 깨끗이 청소를 하겠다
독으로 오히려 치유가 되겠다
때로는 무릎 꿇고
독배를 머리에 쏟아 부어라
독이 되어라
독 같은 계절이라
독 같은 열매로 익어라
세상의 유리가 산산조각 깨지도록
돌처럼 독을 던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