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밭에서 캐낸
단단했던 무가
큰비 견디지 못한
뒷산 언덕배기처럼
형편없이 무너져 내려
무로 돌아가는 때가 있다
펄펄 끓어 오르는 국을 두고
잠깐 세월에게 편지 쓰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지난 봄과 여름의 흙 속에서
무를 만들어 냈으니
이제 가을과 겨울의 흙 밖에서
무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므로
일상의 도가니 속에서
무를 찾아 건져내는 일이란
얼마나 무료한 일이냐
그러니까
무를 찾기 전에
나도 모르게
강 건너간 날들은 다 무효다
무로 하자고
나에게 허락받지 않고
꽃 지는 것으로 잎 지는 것으로
답글 보낸 것들도
다 무관하다
그런데 나도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를
허기로 쑥 뽑아내
흙을 털고 베어 문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