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3일 일요일

어제 밭에서 캐낸
단단했던 무가
큰비 견디지 못한
뒷산 언덕배기처럼
형편없이 무너져 내려
무로 돌아가는 때가 있다
펄펄 끓어 오르는 국을 두고
잠깐 세월에게 편지 쓰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지난 봄과 여름의 흙 속에서
무를 만들어 냈으니
이제 가을과 겨울의 흙 밖에서
무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므로
일상의 도가니 속에서
무를 찾아 건져내는 일이란
얼마나 무료한 일이냐
그러니까
무를 찾기 전에
나도 모르게
강 건너간 날들은 다 무효다
무로 하자고
나에게 허락받지 않고
꽃 지는 것으로 잎 지는 것으로
답글 보낸 것들도
다 무관하다
그런데 나도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를
허기로 쑥 뽑아내
흙을 털고 베어 문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