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9일 화요일
김재진의 ´친구에게´ 외
<친구에 관한 시 모음> 김재진의 ´친구에게´ 외
+ 친구에게
어느 날 네가 메마른 들꽃으로 피어
흔들리고 있다면
소리 없이 구르는 개울 되어
네 곁에 흐르리라.
저물 녘 들판에 혼자 서서 네가
말없이 어둠을 맞이하고 있다면
작지만 꺼지지 않는 모닥불 되어
네 곁에 타오르리라.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네가
누군가를 위해 울고 있다면
손수건 되어 네 눈물 닦으리라.
어느 날 갑자기
가까운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 내게 온다면
가만히 네 손 당겨 내 앞에 두고
네가 짓는 미소로 위로하리라.
(김재진·시인, 1955-)
+ 친구에게
친구야
너는 나에게 별이다.
하늘 마을 산자락에
망초꽃처럼 흐드러지게 핀 별들
그 사이의 한 송이 별이다.
눈을 감으면
어둠의 둘레에서 돋아나는
별자리 되어
내 마음 하늘 환히 밝히는
넌
기쁠 때도 별이다.
슬플 때도 별이다.
친구야
네가 사랑스러울 땐
사랑스런 만큼 별이 돋고
네가 미울 땐
미운 만큼 별이 돋았다.
친구야
숨길수록 빛을 내는 너는
어둔 밤에 별로 떠
내가 밝아진다.
(박두순·시인, 1950-)
+ 친구
오랜 침묵을 건너고도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라는 이름 앞엔
도무지 세월이 흐르지 않아
세월이 부끄러워
제 얼굴을 붉히고 숨어 버리지
나이를 먹고도
제 나이 먹은 줄을 모른다네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
애정이 있으되 묶어 놓을 이유가 없네
사랑하되 질투할 이유도 없네
다만 바라거니
어디에서건 너의 삶에 충실하기를
마음 허전할 때에
벗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신은 우리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셨네
우정의 나뭇가지에 깃든
날갯짓 아름다운 새를 주셨네
(홍수희·시인)
+ 보고 싶은 친구에게
보고 싶은 친구에게
친구야, 해가 저물고 있다.
어두운 불투명의 고요가 찾아오면
난 버릇처럼 너를 그린다.
너의 모습,
네가 떠난 설움처럼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보고싶다.
내 마음 저 깊은 곳의 미완성 작품처럼
자꾸만 보고 싶은 너.
우리가 이 다음에 만날 때는 어떤 연인보다도
아름답고 다정한 미소를 나누자.
나는 너에게
꼭 필요한 친구, 없어서는 안 되는 친구가 되고 싶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야!
해가 저물고 있다.
이렇게 너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가고 있다.
울어 본 적 있는 친구가....
(신경숙·소설가, 1963-)
+ 친구에게
친구야
널 한 번도 미워해 본 적이 없어
나를 멀리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네가 밉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미웠어
이렇게 비가 오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리울 땐
자꾸 네 생각이 나
사랑보다 더 강한 것이
우정이란 걸 넌 아니?
사랑보다 더 깊은 추억을
새겨 준 친구야
(최복현·시인, 1960-)
+ 친구
좋은 일이 없는 것이 불행한 게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다행한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이나 원망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더러워진 발은 깨끗이 씻을 수 있지만
더러워지면 안 될 것은 정신인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투덜대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실상의 빛을 가려버리는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발길질이나 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천양희·시인, 1942-)
+ 쓸모 없는 친구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무슨 용건이 있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빚 갚을 돈을 빌려주지도 못하고
승진 및 전보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아들 딸 취직을 시켜 주지도 못하고
오래 사귀어 보았자 내가
별로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는 오래 전에 눈치챘을 터이다
만나면 그저 반가울 뿐
서로가 별로 쓸모 없는 친구로
어느새 마흔 다섯 해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김광규·시인, 1941-)
+ 한 둘
이만큼 살다보니
함께 나이 든 친구 한 둘
뭐 하냐 밥 먹자
전화해주는 게 고맙다
이만큼 살다보니
보이지 않던 산빛도 한 둘
들리지 않던 풍경소리도 한 둘
맑은 생각 속에 자리잡아 가고
아꼈던 제자 한 둘
선생님이 계셔 행복합니다
말 건네주는 게 고맙다
(허형만·시인, 1945-)
+ 친구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누가 몰랐으랴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끼리도
끝까지 함께 갈 순 없다는 것을...
진실로 슬픈 것은 그게 아니었지
언젠가 이 손이 낙엽이 되고
산이 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언젠가가
너무 빨리 온다는 사실이지
미처 숨돌릴 틈도 없이
온몸으로 사랑할 겨를도 없이
어느 하루
잠시 잊었던 친구처럼
홀연 다가와
투욱 어깨를 친다는 사실이지
(문정희·시인, 1947-)
+ 외로운 벗에게
고독하십니까,
운명이옵니다
몹시 그립고 쓸쓸하고, 외롭습니까,
운명이옵니다
어이없는 배신을 느끼십니까,
운명이옵니다
고립무원, 온 천하에 홀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계시옵니까
그것도 당신의 운명이옵니다
아, 운명은 어찌할 수 없는
전생의 약속인 것을
그곳에 그렇게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는 것도
이곳에 이렇게
가랑잎이 소리 없이 내리는 것도
(조병화·시인, 1921-2003)
+ 서울 사는 친구에게
세상 속으로 뜨거운 가을이 오고 있네
나뭇잎들 붉어지며 떨어뜨려야 할 이파리들 떨어뜨리는 걸 보니
자연은 늘 혁명도 잘하구나 싶네
풍문으로 요즈음 희망이 자네 편이 아니라는 소식 자주 접하네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싶거든, 이리로 한 번 내려오게
기왕이면 호남선 통일호 열차를 타고 찐계란 몇 개
소금 찍어 먹으면서 주간지라도 뒤적거리며 오게
금주의 운세에다 마음을 기대보는 것도 괜찮겠고,
광주까지 가는 이를 만나거든 망월동 가는 길을 물어봐도 좋겠지
밤 깊어 도착했으면 하네, 이리역 광장에서 맥주부터 한잔 하고
나는 자네가 취하도록 술을 사고 싶네
삶보다 앞서가는 논리도 같이 데리고 오게
꿈으로는 말고 현실로 와서 걸판지게 한잔 먹세
어깨를 잠시 꽃게처럼 내리고, 순대국이 끓는
중앙시장 정순집으로 기어들 수도 있고, 레테라는 집도 좋지
밤 12시가 넘으면 포장마차 로진으로 가 꼼장어를 굽지
해직교사가 무슨 돈으로 술타령이냐 묻고 싶겠지만
없으면 외상이라도 하지, 외상술 마실 곳이 있다는 것은
세상이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날이 새면 우리 김제 만경 들녘 보러 가세
지평선이 이마를 치는 곳이라네, 자네는 알고 있겠지
들판이야말로 완성된 민주대연합이 아니던가
갑자기 자네는 부담스러워질지 모르겠네, 이름이야 까짓것
개똥이면 어떻고 쇠똥이면 어떻겠는가
가을이 가기 전에 꼭 오기만 하게
(안도현·시인, 1961-)
+ 우리는 친구
내 친구와 나는 서로의 추억을 비교해본다.
때론 수줍어하면서도
우린 기꺼이 진실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청춘과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몇 사람 있었니?
그 남자들은 모두 사랑했었니?
멋있었니? 키는 컸니?
이름도 모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래, 이해해
나도 한 사람이 있었지.
나를 성숙시켜 준
그 사람은 내 영혼의 한 조각을 물어뜯어
끝내는 상처를 주었지만
나는 내 전부를
네게 말하고 있는 거야.
너도 내게 털어놓아 봐.
아마 우리가 사랑을 느낄 때 행복하듯이
이해받고 위로받는 기쁨을 느낄 거야.
기쁨과 슬픔 나눠 가지는
우리는 친구.
(다니엘 스틸)
+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
내 말해 주지
친구란 함께 있으면 그대 자신을 돌이키게 해주는 사람이지
친구란 함께 있으면 그대에게 순수한 영혼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지
그대가 더 나아지는 것도 못해지는 것도 원치 않는 사람이지
함께 있으면 그대에게 무죄를 선고받은 죄수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지
친구란 그대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대의 천성적인 모순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지
함께 있으면 자유로이 숨쉴 수 있는 사람이지
그대에게 약간의 허영심과 질투와 미움과 사악한 기질이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이지
그대의 결점을 털어놓아도 그것들을 마음에 새기지 않고
그의 마음속에 있는 충심의 바다에 풀어버리는 사람이지
그는 그대를 이해해 주지 그대는 그대에게 조심하지 않아도 되지
그대는 그대를 욕해도 되고 소홀히 해도 되고 용서해 주어도 되지
이 모든 것을 통해 그는 그대를 보고, 알고 사랑하지
친구? 친구가 어떤 사람이냐고? 바로 이런 사람
한번 더 말하지만
함께 있으면 그대 자신을 돌이키게 해주는 사람이 친구지
그러나 친구의 가장 좋은 점은 그와 함께 침묵을 지킬 수도 있다는 거지
그래도 문제될 것은 없지. 그는 그대를 좋아하니까
그는 뼈를 깨끗이 씻어주는 불과도 같지. 그는 그대를 이해해주지
그는 그대를 이해해주지
그대는 그와 함께 울고 그와 함께 노래하고
그와 함께 울고 그와 함께 노래하고
그와 함께 웃고 그와 함께 기도할 수도 있지
(제임스)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