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7일 일요일

폴 엘뤼아르의 ´자유´ 외


<자유에 관한 시 모음> 폴 엘뤼아르의 ´자유´ 외

+ 자유

나의 학습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약혼 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하늘빛 옷자락 위에
태양이 녹슨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멋없는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곧게 뻗어나간 큰 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꺼진 램프 위에
모여 앉은 나의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돌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나의 방 위에
빈 조개 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나의 강아지 위에
그의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의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된 불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균형잡힌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초월한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대 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폴 엘뤼아르·프랑스 시인, 1895-1952)
+ 새장을 벗어난 새의 노래

하늘의 축복 받아 태어난 아름다운 새 한 마리
긴 세월 새장 속에 갇혀 춤을 추거나
억지 노래 불러야했다

떠나야지, 벗어나야지
슬픈 노래 부르다 우울병 깊어
숨져갈 수는 없지

호시탐탐, 기회 엿보다
날갯죽지 상처 입은 채
넓고 넓은 하늘을 날았다

난생처음 소낙비 젖어 느껴보는 자유
어미 품, 고향 산에서 부르는 환희의 노래
그 새를 기억하던 나무, 바위, 춤추며 듣는다

그 노래 가사는 이랬다
별빛 향해, 진정한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는
아무리 배불러도 행복할 수 없다
(손희락·시인이며 문학평론가, 대구 출생)
+ 사람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같이 완벽한 그림만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게나 막 그림을 그렸다.
내 그림을 보고 누구나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작자 미상)
+ 너를 부르마

나는 숨을 쉬고 싶다.
내 여기 살아야 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공기(空氣)여, 새삼스레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이름을 부른 뒤에도
그 이름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
자유(自由)여.
(정희성·시인, 1945-)
+ 지상의 양식

너희들의 비상은
추락을 위해 있는 것이다.
새여.
알에서 깨어나
막, 은빛 날개를 퍼덕일 때
너희는 하늘만이 진실이라 믿지만,
하늘만이 자유라고 믿지만
자유가 얼마나 큰 절망인가는
비상을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진흙밭에 뒹구는
낱알 몇 톨,
너희가 꿈꾸는 양식은
이 지상에만 있을 뿐이다.
새여.
모순의 새여.
(오세영·시인, 1942-)
+ 자유 길

자유에로 가는 길,
자유롭게 가는 길,
자유의 길,
어딘가 꼭 있는데,
길 하나는 아니고
길 둘도 아니고
길이 없는 것도 같으니!

길을 새로 닦아야 하고
자유에로 가는 길,
자유롭게 가는 길,
자유의 길로
새로 닦아 가는 길이니!

새로 닦아 가는 길,
자유롭게,
자유를 위해,
자유 길!
(강월도·시인, 1936-2002)
+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 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누어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민주주의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속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김남주·시인, 1946-199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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