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관능적인 숙성

한 철 밀봉해서 담가두었던
生의 뚜껑을 열었더니
냄새가 향기롭다
장독 위에 올려놓은 삶마다
숙성으로 움 튼다
그러니까 당신과 나와,
해와 달로 만든 새벽과 어둠과
그리고 소금의 바다와
불의 사막과 얼음의 강이
항아리 안에 다 들었다는 말이다
거기에다 꽃도 잎도 열매도
얼지 않게 깊숙히 넣었다
게다가 발효하기 좋게
바야흐로 화창한 봄날씨다
가랑비까지 촉촉하게 내려
당신과 내가 옷이 다 젖었다
새끼 손가락으로
항아리 속에서 익어가는
당신을 찍어 맛을 보니
지옥같이 아득하다, 그윽하다
서로 몸 눕히면서 포옹하면서
한바탕 눈물 흘린 것도 웃은 것도
항아리 속의 장 같은 세상을
알맞게 익혀줄 효소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과 내가
균이 되어 세상을 푹 썩혀야 한다
네몸과 내몸이 한데 어울려
뼈까지 흐물흐물 녹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