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7일 일요일

어느 귀천歸天 / 서동균

어느 귀천歸天 / 서동균

깜깜하다 눈을 뜨고 손을 내저어 봐도
잡히는 것 하나 없이 깜깜하다
거친 주먹질에 멍든 상처가
아직 보라색 등꽃으로 남아 있다

산도産道를 빠져나오듯 빠져나온
방문 앞이 절벽이었다
사정없이 날아온 아비의 주먹에
세 살배기의 가쁜 숨이 멎었다
찬 밤공기가 남겨진 육체를 감싸 안았다
쳐다보기만 하는 어미
둥지에서 떨어진 개똥지바귀 새끼처럼
풀린 동공은 여전히 어미 쪽을 향했다

영하 12도의 칼바람이 주검을 시커멓게 얼렸다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 버려진 노장路葬
구석진 세탁기 베란다 벽에 걸린 풍장風葬
아스팔트 쓰레기더미에서 파헤쳐진 조장鳥葬
태어날 때 덮었던 흰색 이불에 겹겹이 싸여
택배용 상자에 버려진 아이가
황토색 테이프에 묻은 어미의 지문을 놓지 않았다
유치장에서도 아이의 울음이 성가셨다는 아비, 어미

희나리를 태우듯 영가靈駕를 올려 보낸다
풀잎에 베인 햇살이 은박줄처럼 반짝인다
2011년 계간 <시안> 가을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