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폭포, 오래 전에 비의 기억을 가진 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향하여 온몸으로 저토록 무섭게
내려 꽂아 뼈에 정신에 닿으려고 하는
치열한 열정의 사랑을 보여 주는
저 폭포가
사실은 작은 빗방울부터 시작했음을 기억하라
내가 우연히 막다른 어느 별의 골목길에서
그대의 눈빛 하나를 건네 받고 마구 마구
북치듯 마음이 요동치며 일어났던 것처럼

폭포는 처음에 어두운 구름 속을 방황하며
갖다 버리고 싶은 자신의 내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믿음을 잃어 버리고 기도를 잃어 버리고
오직 절망과 분노를 머금은 채
저 소나기는 나를 비워
이 세상을 다 적시고 싶었던 것이다
이 세상을 섬처럼 가라앉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그대를 만나기 전까지
나를 아니라고 부인하고 거부했던 것처럼

폭포는 그 후 작은 시냇물이 되었을 것이다
밖의 어딘가로 스며들지 못하고 달아나지 못하고
하나씩 둘씩 모여들어
서로가 서로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쓰다듬으며 나무 우거진 깊은 산 속 비탈에서
저 시냇물은
아래로 아래로 천천히 몸을 기울였던 것이다
내가 그대를 지켜보다가 남모르게
숨어서 그리워하다가 한 순간에
마음 쑥쑥 자라나 키 큰 대나무가 되었던 것처럼

폭포는 그 후 거칠게 흘러가며 이 바위 저 언덕
흔들어대는 계곡의 물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곳 저 곳에서 모여든 냇물이
오랫동안 못 보았던 님을 이제 만나
눈도 마주치고 손도 잡아보고
고운 목소리도 들어보려는 듯 웅성거리며 웅성거리며
흘러가다가 흘러가다가 제 마음 다 드러내려고
어느 순간에 계곡 아래 천 길 만 길 낭떠러지
벼랑 아래로 제 마음을 다 드러내면서
폭포가 되었던 것이다
참지 못하고 그대에게 다가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다 드러냈던 것처럼

폭포는 그 후 강으로 바다로 흘러 갔을 것이다
이쪽 저쪽 나와 그대를 가로막는
다리를 지나 사납게 몰아치는 파도를 지나
흥겨운 춤 추면서 아름다운 노래도 부르면서
내가 그대를 한 아름 안고
그대가 나를 한 아름 안고
가다가 가다가 지는 해 떠 오르는 달을 보다가
다시 비가 내리는 흐리고 흐린 그 어느 날
저 빗방울 하나가
사실은 폭포의 기억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