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대합실

열린 공간끝으로 내려져있는 정지신호
지평선을 잡아 끌어 자갈로 덮고
숨죽이며 기다리는 완만한 포복

역을 향해 달려오는 열차는 레일의 진동
그 떨림마다 흩어지는 조락(凋落)의 언어
땅 위를 뒹구는 파편의 신음
부스러지는 기억들
철길 위에 피어오른 들국화
기다림이 꽃피운 끈질긴 생존

시골처녀 가슴에 걸린 십자가
더 이상 울지않으려는 희미한 구원의 성호(聖號)
옆에서 졸고 있는 스님의 염주
깊은 산속만 날아다니던 뜻모를 여래장(如來臧)
그 모두,
옷 벗은 나뭇가지에 걸린 지루한 침묵

기다란 기다림에 지겨운 승객들은 큰 하품
대합실은 발권된 승차권의 표정없는 얼굴들을
하나 둘 잠재우며 지켜보다가
다음 열차 도착시각에 묵묵히 손가락질
공연스레 일어난 익숙치 못한 의심은
부는 바람 낙엽처럼 땅 위를 구르며
시간에 쫓기는 서투른 자기점검

한구석 쳐박혔던 고장난 티이브이는
생활을 아름답게 미래를 풍요하게
화면없는 목소리로 생명보험 광고방송
그 찌지직 소음 소리에 섞여
안내방송도 없이 도착하는 열차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안고
죽음보다 무거운 삶을 부여안고
그림자 남긴 채
의자에서 일어나고
그렇게 사라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