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8일 금요일

나태주의 ´시장길´ 외


<시장에 관한 시 모음> 나태주의 ´시장길´ 외

+ 시장길

모처럼 시장에 가 보면
시끌벅적한 소리와
비릿비릿한 내음새,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냄새와 소리들,
별로 살 물건 없는 날도
그 소리와 냄새 좋아
시장길 기웃댄다.
(나태주·시인, 1945-)
+ 시장

허전한 사람들은
다들 모였다.

잃은 것이 많은 사람들
잃은 것을 찾으려고 허둥들 댄다.

바다를 잃은 사람은
청어, 조기, 삼치를 사 들고 가고
고향을 잃은 사람은
산나물을 한 바구니 담아 간다.

파는 이나 사는 이나
다 같이 외로워 보이는
시장 안

목청마다 퍼런 외로움이 고이는
오늘
허전한 사람들은
다들 모였다.
(윤수천·시인, 1942-)
+ 그릇 장수

햇살을 팝니다.

시골 장날,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파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맑은 햇살.

잘 닦은
양은 그릇이랑
대야에 가득
담아 팝니다.

하루 종일
햇살을 판 값.

앞주머니에서 꺼내
헤아리는 그릇 장수의
손 안에는

금돈이 서너 줌이다.
은돈이 한 줌이다.
(전병호·아동문학가)
+ 마트에 사는 귀신

우리 엄마 하는 말이
마트에는
지갑을 터는 귀신이 산대요.
한번 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주머니에 든 현금이나
카드를 다 턴다고
보이지 않는 강도래요

웬만하면 우리 엄마
나는 데리고 다니지도 않아요
내가 가기만 하면
ˆ품엽枯킵?아니고
달디단 귀신에 홀린다고 그래요

아이스크림 귀신
사탕 귀신
케이크 귀신
과자 귀신
단 것만 노리는 귀신이
따라다니며 귀찮게 한다고
나를 마트에는 얼씬도 못하게 해요
(한선자·아동문학가, 1968-)
+ 구멍가게

골목 안 구멍가게
가스불만 흔들리고

동전 한 닢 내미는
꼬마손님 기다리고

할머니 빈 소쿠리엔
손녀 얼굴 담기고.
(박석순·아동문학가)
+ 시장 가는 날

오늘은 장날
소들이 시장으로 가지요.
우리집 소
집에서 갈비찜을 먹지요.

아무것도 모르고
아침도 못 먹고 시장으로 가는 소
벌써 눈물이 흐르고 있어요.

울고 가는 소를 볼 때
내 눈에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 있어요.
(조동천·아동문학가)
* ´입양아 어린이날´ 2002년 당선작
+ 시장 사람들

하루의 밥거리를 위하여
상인들은 바쁜 손놀림으로
장작불을 피우고
새벽 찬 공기를 덥히며
서로의 아침을 격려하는 새벽
구부정 할매도
구부정 아저씨도

비닐포장으로 잘 동여매었다.
바쁜 손길을 주고받는다.
손수레의 팔 물건들을 정리하고
호호 입김을 불며
안녕하슈!

할머니는
총각! 여그 당근 한 다발하고
배추 다섯 단만 가져와!˝
시장에 아침을 연다.
(김형효·시인, 1965-)
+ 모란시장에서

몸과 마음 쑤시는 날
詩를 덮고 모란시장에 가네
찰찰 넘치는 생의 비린내 속
황구처럼 어슬렁거리다가
오일장 한 구석
푸성귀 더미 위에 부려진
내 그림자를 바라보네
바람에 쓸려 헐렁해진 하루도
파릇파릇 봄 잔치에 섞이니
장딴지에 슬며시 물이 오르고
겨드랑이가 간지럽네

알타리무, 돌미나리
좌판을 벌린 노파의 손등에
파종하듯 뿌려지는 햇살
검버섯 돋은 세월의 강 건너
염소를 몰고 장닭을 몰고
지상의 낮은 사랑을 몰고 오네
오백 량이오, 천 량이오
변방의 수수 많은 소리들이
서로 뿌리를 대고 힘을 보태는
저 구릿빛 건강한 외침이
등 푸른 삶의 싹을 틔우는가

罷場,
모란 잎 같던 꿈을 접는 어깨 위로
고추씨만한 풋별이 뜨네.
(이영식·시인, 경기도 이천 출생)
+ 시장에서

손수레 위 합판 베고 나란히
모로 누워 겹 잠든 간 고등어들
토막 치기 바쁜 남정네가 무시로
한 손에 천원, 억수로 싸다, 싸
고래고래 걸쩍대는 저만치
언제부터였을까,
옥비녀로 쪽진 할머니가
완두콩 한 사발 놓고
시름없이 쪼그려 앉아 있다
눈길조차 흘리지 않는 야속한 발걸음들
행여 거리끼다 엎질러질라
콩 사발만 들었다 놓았다
오금 저린 해넘이
떨이 북새통 끝에 갈무리하던 남정네
남은 간 고등어 한 손 토막 쳐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공짜로 건네는 목청이 걸쭉하다
(권오범·시인)
+ 어시장에서

어시장에
바다 바람이 분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의 바다 바람이
상인들의 혀끝에서 회오리 친다

뜬눈으로 죽은
고등어, 상어, 갈치, 농어들이
파도 같은 허연 배때기로 누워 있다

나무 상자 위에
가오리들이
엎드려 헤엄쳐 가고

물기 마른 세상,
조기들이 허리띠 졸라매고
공중으로 헤엄쳐 간다

발 옹그리고
허리 구부리고 깊이 잠이 든
새우, 대하, 멸치들

허리 펴고 살 수 있는
넓은 세상
바다를 꿈꾸고 있다
(박덕중·시인, 1942-)
+ 새벽 어시장

밤바다의 불빛들이
포구에 하나 둘 닻을 내리면
싱싱한 바다가 뭍으로 쏟아져 내리고
왁자지껄
어시장은 새벽잠을 깬다.

모닥불 곁에서
어부들은 간밤의 무용담을 나누고
살기를 띤 군중들이
튀는 것들을 향해 아우성 치면
도마에서 흐르는 피로
세상은 어둠을 씻는다.

비릿한 바다의 생명이
지상으로 부활하는 시간

빙원(氷原)에 일렬로 누워
막 은도금을 마친 듯 번쩍이는
보검(寶劍)들이 지금
서성이는 내 지갑을 겨누고 있다.
(한승수·제주도 출생)
+ 재래시장·3

살아서 퍼덕이는 우럭 두 마리를
매운탕거리로 장바구니에 담고 나니
바다냄새가 난다

어느 바다에서 왔을까

아직 그 바다는
이 시장을 누비는 사람들 생각보다는
분명 맑겠지

고된 삶의 길 위에서
나름대로 속앓이를 하는
사람 사는 일을
바다가 알 리 없을 테지

삶의 한 켠
네게 내가 다치고
내게 네가 다치는 날들의 아픔 속에서도
결코 무너질 수 없는 날들의 연속
의미 부여조차 힘겨웁다

퍼덕이는 우럭을 보며
바다에서는
아직 세상과 싸워 이기는 힘이
남아 있을 거라 여기며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박안나·시인)
+ 인력시장이 보이는 풍경

하루만큼의 인생을 싸들고
새벽이 끝나는 등성이에서 서성인다
보퉁이 속에는 때묻은 장갑과 수건이
포수에 잡혀온 비둘기 마냥 말이 없다
굵은 팔뚝과 억센 힘줄은 빛 바랜 은화
저울 눈금에 살점 잘려나가듯
원시의 상품들은 자기 몫의 슬픔을 내보이고
눈인사 몇 마디로 외꽃 같은 삶이 눈을 뜬다
인력시장이 내려다보이는 달동네
검은 굴뚝 위로
부지런한 아침 까치가 날아가고
팔리다 팔리다 남은 자투리 꿈들은
떠오르는 해가 부끄러워
쥐도 새도 모르게 구멍 속으로 숨는다
허연 입김만이 깔려있는 인력시장
모두 다 떠나버린 길바닥엔
낯선 발자국들이 오고가고
허리 굽은 청소부가 뒷자리를 치운다
(정군수·시인, 1945-)
+ 시장에서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들러보았죠.
수줍은 제비꽃에 벗은 완두콩.
그에게는 아무짝에 소용없는 것.
그럼그럼 딸길 살까 바나날 살까?
아니면 익살맞은 쥐덫을 살까?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둘러보았죠.
한 쾌의 말린 뱀, 목에 늘인 할아범.
아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
뽀골뽀골 미꾸라지 시든 오렌지
아니면 특제 실크덤핑넥타이.
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

복작복작 밀리며 걷는 내 손엔
한 쪽엔 아이스크림 한 쪽엔 풍선.
농담처럼 절뚝절뚝 뛰는 지게꾼.
그 뒤를 바싹 쫓아 빠져나왔죠.
주머니에 뭐가 있나 맞춰보아요.
바로바로 올림픽 복권이어요.
만약에 첫째로 뽑힌다면은
아아아아 재밌어 너무 재밌어
풍선처럼 그이는 푸우 웃겠죠.
(황인숙·시인, 1958-)
+ 남대문시장에서

오늘 나는 유령이다
내가 물로 흐르거나
내가 피로 흐르거나
事件이거나
事物이거나
그건 유령의 자유이다

오늘 나는 유령이다
나는 내 육체를
정신에 묶지 않는다
걱정 마라 나여
때로 방종은 유쾌하고
방임은 풍자가 된다

육체여 오늘의 나는
재미가 좋구나
정신의 풍자가 되는
육체여 오늘의 나는
예술과 사회를 강의하고
강의료를 받고
봉투를 바지 주머니에
넣어 쥐고
남대문시장을 오가며
수입 상가에서 빨간색
외제 팬티도 산다

육체여 그 동안 안녕한가
집에 혼자 있는 동안
강간이라도 당하지 않았는지
(오규원·시인, 1941-200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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