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7일 목요일

북한강 기슭에서 -고정희-

위로받고 싶은 사람에게서 위로받지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두 눈에서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등을 기대고 싶은 사람에게서
등을 기대지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두 눈에서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건너지 못할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루나무 잎새처럼 안타까이
손 흔드는 두 눈에서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상에 안식이 깃드는 황혼녘이면
두 눈에 흐르는 강물들 모여
구만리 아득한 뱃길을 트고
깊으나 깊은 수심을 만들어 그리운 이름들
별빛으로흔들리게 하고 끝끝내 못한 이야기들
자욱한 물안개로 피워올리는
북한강 기슭에서, 사랑하는 이여
내 생애 적셔줄 가장 큰 강물 또한
당신 두 눈에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