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권달웅의 ´작은 평화´ 외


<평화에 관한 시 모음> 권달웅의 ´작은 평화´ 외

+ 작은 평화

어항 앞에 있으면
우리도 평화롭게 노니는
금붕어가 된다.
화려한 말보다는
아주 작은 말로
사랑하는 마음을 보면
우리도 행복하게 된다.
믿음이 있는 말을 주고받는
정직한 세상에서
우리도 살고 싶다.
금빛 지느러미처럼
아름답고 밝은 마음으로
미움 없이 입 맞추며
우리도 살고 싶다.
(권달웅·시인, 1944-)
+ 평화

텅 빈 겨울 숲
나도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가만히 기도하고 싶다.
(김영월·시인, 1948-)
+ 평화

단칸짜리 방이나마 도배를 하고
방바닥에 큰대(大)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날이여,
이렇게 마음 편할 줄이야
평화가 거기 숨어 있을 줄이야
(김형영·시인, 1945-)
+ 평화롭게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 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김종삼·시인, 1921-1984)
+ 봄날 아침

때는 봄
아침
일곱 시
이슬 젖은 언덕 기슭에서
종달새 노래하며 하늘에 날고
달팽이 가시나무 위를 기어가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니,
온 누리가 평화롭구나
(로버트 브라우닝·영국 시인, 1812-1889)
+ 평화로 가는 길은

이 둥근 세계에
평화를 주십사고 기도하지만
가시에 찔려 피나는 아픔은
날로 더해 갑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먼가요.

얼마나 더 어둡게 부서져야
한줄기 빛을 볼 수 있는 건가요.

멀고도 가까운 나의 이웃에게
가깝고도 먼 내 안의 나에게
맑고 깊고 넓은 평화가 흘러
마침내 하나로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울겠습니다.

얼마나 더 낮아지고 선해져야
평화의 열매 하나 얻을지
오늘은 꼭 일러주시면 합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이 평화를 깨는 것도 흰 눈이 하게 하라

흰 눈이 내리는 흰 눈의 나라는
흰 눈 자체만으로 하얗다, 고요하다, 가득하다
그 누구도 한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한다
한발자국도
하얗다, 고요하다, 평화스럽다
이 고요를 깨는 것, 내리는 흰 눈이고
이 평화를 깨는 것, 내리는 흰 눈이고
흰 눈이 내리는 흰 눈의 나라는 흰 눈이 하게 하라
흰 눈이 하게 하라
한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한다
흰 눈이 지우리라.
(신현정·시인, 1948-)
+ 손에 강 같은 평화

사람 손가락이 열 개인 까닭에
십진법이 생겼다고 한다
이 손이 소처럼 뭉툭했다면
번잡한 삶 얼마나 단순하고 평화로웠겠는가
새의 날개 같았다면
가볍게 떨리는 마음으로도
얼마나 멀리 날아갈 수 있었을까

내 손은 나날이 내게서 멀어져 간다
낡은 도자기처럼 은은하게 잔금이 깔리고
푸르렀던 힘줄도
스웨터에서 풀려 나온 실처럼 느슨해져
세상을 움켜쥐기보다
누구나 손잡기 쉽게 되었다

이 손 강 같았으면
남원 어느 샛강처럼
둔덕을 끼고 느리게 돌아가는 강 같았으면
신발 벗어들고 생을 건너다
흰 발등 내려다보며 아득해진 마음이여
그 마음 쓰다듬는 얕은 강이여
내 손 그런 강 같았으면
(장경린·시인, 서울 출생)
+ 김치찌개 평화론

김치찌개 하나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
하루의 피곤과 침침한 불빛을 넘어서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실한 비계 한 점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 주며
야근 준비는 다 되었니 어머니가 묻고
아버지가 고춧잎을 닮은 딸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지 그렇게 얘기할 때
이 따뜻하고 푹신한 서정의 힘 앞에서
어둠은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흔들린다
이 소박한 한국의 저녁 시간이 우리는 좋다
거기에는 부패와 좌절과
거짓 화해와 광란하는 십자가와 덥석몰이를 당한 이웃의 신음이 없다
38선도 DMZ도 사령관도 친일파도
염병할, 시래기 한 가닥만 못한
이데올로기의 끝없는 포성도 없다
식탁 위에 시든 김치 고추무릅 동치미 대접 하나
식구들은 눈과 가슴으로 오래 이야기하고
그러한 밤 십자가에 매달린
한 유대 사내의 웃는 얼굴이 점점 커지면서
끝내는 식구들의 웃는 얼굴과 겹쳐졌다
(곽재구·시인, 195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성 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