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9일 토요일
반기룡의 ´추억의 도시락´ 외
<도시락에 관한 시 모음> 반기룡의 ´추억의 도시락´ 외
+ 추억의 도시락
직사각형 똬리 튼
지붕 안에서 추억이 스멀거린다
고추장 김치 계란말이 콩자반
서로 부대끼며 뒤범벅으로
얼씨구 지화자 좋다 얽히고 설켜서
책보와 더불어 뒤에 매달고
신나게 달리던 배고픔의 해결사
땡땡땡
종소리 끝나기 무섭게
깊은 터널 하나 뚫는다
터널 속에 웅크리고 있는
냄새 하나하나 끄집어 내다보면
금세 허무에서 희망의 기분으로 바뀌고
달가닥 달가닥 소리 귀청을 찢는다
그 소리엔 온갖 도시락에 얽힌 애환이
새싹처럼 아장아장 눈 비비며 돋아난다
도시락은 어머니의 숨결이었다
도시락은 어머니의 정성이었다
도시락은 까먹는 즐거움이었다
도시락은 추억과 낭만의 상징이었다
(반기룡·시인)
+ 슬픈 도시락
춘천시 남면 발산중학교 1학년 1반 류창수
고슴도치같이 머리카락 하늘로 치솟은 아이
뻐드렁 이빨, 그래서 더욱 천진하게만 보이는 아이.
점심시간이면 아이는 늘 혼자가 된다.
혼자 먹는 도시락,
내가 살짝 도둑질하듯 그의 도시락 속을 들여다볼 때면
그는 씩- 웃는다
웃음 속에서 묻어나는 쓸쓸함.
어머니 없는 그 아이는 자기가 만든 반찬과 밥이 부끄러워
도시락 속으로 숨고 싶은 것이다.
도시락 속에 숨어서 울고 싶은 것이다.
´어른들은 왜 싸우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인지?´
깍두기 조각 같은 슬픔이 그의 도시락 속에서
빼꼼히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이영춘·교사 시인, 1941-)
+ 도시락
꼬르륵 아이 배고파
점심시간을 알리는
내 몸의 신호음들
그래 조금만 노래해라
기쁘게 해줄 테니
도시락을 여는 순간
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오이무침
성큼 성큼 집어먹으며
엄마의 손길에 눈물이 글썽.
(김세실·아동문학가)
+ 어린 딸에게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마종하·시인, 1943-)
+ 도시락 검사
쌀이 남아돌아 고민인
이 풍요의 세월엔
상상도 못할 일이지
모두
책상 위에 도시락을
펼쳐놓고 검사를 받았다
워낙 못 살던 시절이라
쌀이 조금 섞인 꽁보리밥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부잣집 아이들은
쌀밥을 싸 와서
선생님께 혼이 났었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밥도
맛없다며 햄버거 조각이나
씹는 요즈음 아이들
배고픔이 뭔지도 모르는
행복한 세대들
니들이 도시락 검사를 알아
쌀밥 싸 왔다고 혼나던 시절
상상이나 하겠니.
(우공 이문조·시인)
+ 도시락
학교길 서둘러 대문 앞 나설 때면
어머니가 넣어주시는 네모 도시락
누나부터 동생까지
크기대로 차례대로 하나씩 하나씩
누나는 동그랑땡 나는 계란말이
개구쟁이 동생은 콩장이 가득.
점심시간 되기 전에 궁금해서 또 한번
사~알~짝 열어보니
어머니 정성이 도시락 가득.
즐거운 점심시간
친구들과 사이좋게 나눠먹고 바꿔먹고
튼튼한 우리는 개구쟁이들.
집 가는 길 뛸 때마다 딸그락 떨그럭
같이 가자 빈 도시락 춤추는 소리
어머니 손길이 내닫는 소리.
(강민진)
+ 꽃 도시락
이 여름에는 한데 놓아도
결코 쉬지 않는
나리꽃, 접시꽃, 투구꽃, 달맞이꽃
들녘에 가득한 꽃을 따서
도시락에 담아
당신에게 보내 드리련다
내가 보내준 꽃향기를 맡고
살 떨리도록 피 맺히도록 중독되라고
내가 전해준 꽃밥 먹고
꽃처럼 붉은 마음 피어나라고
꽃보다 고운 눈길 보내달라고
내가 건네 드린 도시락 받아서
배고플 때 한 술 드시면
가슴속에 지녔던 얼음의 꽃이
구토처럼 터져 나오겠고
뱃속에 지녔던 곰팡이 꽃이
밑으로 다 쏟아져 나오겠고
한 술 더 드시면
옥에 갇힌 춘향이가
창살에 걸린 달만 바라보듯이
구름다리에 못 박힌 황진이가
바위에 휘돌아가는 물만 바라보듯이
꽃 도시락 다 드시고
임자 같은 나
한 사람만 기억하라는 것이다
내게 꽃으로 다가와서
온종일 나의 주인이 되시라
살 같은, 피 같은 꽃 드시고
내 속에서 평생 꽃집 짓고 사시라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 엮은이: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문병란의 ´인연서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