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6일 수요일

겨울 모과나무

칠백의총 묘지 옆에
겨울 모과나무 한 그루
얼어버린 열매 몇 개
굳세게도 가지에 매달려 있고
발목 근처에는 또
숨 끊어진 열매 몇 개
전장의 시체처럼 뒹굴고 있다
무기도 없이 맨주먹으로
겨울과 맞서 싸웠으니
저 모과의 죽음이 장렬하다
누가 거두지도 않아
뼈까지 벌레 파고드는 모과를
흙속에 곱게 묻는다
나도 모과 너처럼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고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
한겨울보다 더
온몸을 단단하게 얼려서
강철도 못 뚫게 하겠다
모과 너처럼 고개 숙이지 않고
무릎 꿇지 않고
싸우다가 그냥 죽겠다
여기 의로운 묘지 옆에
이름도 없이 묻힐 수 있다면
나도 열매 떨어뜨리지 않은 채
사철 참배만 드리겠다
그냥 선 채로 적멸에 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