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7일 토요일

말의 눈동자에 가을 하늘이 담겨져 있다

한몽직통항로 동북아 하늘을 날아
울란바토르 ,종일 초원을 말 달려 말의 산지로 간다
옛부터 천마, 비마, 비천마등 명마의 산지
오르본강, 알타블라크, 후룬호, 만저우리 변방으로
왜 말들 하고도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지
검정색, 흑색, 갈색, 황색, 백색, 얼룩말, 조랑말 등
끝없는 자연의 빛 아래 초원의 자색연기 떠도는
드넓은 자연목장에 마구 풀어 놓으며
멋대로 방목하는 수십만 마리 말들 가운데
그 중 한 마리,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오는 것이었어
마치 전생의 부부라도 되는 듯
다정한 눈길, 출렁이는 갈기, 흔들리는 몸짓,
내게로 가까이 다가와 몸을 바싹 기대며 볼을 부비며
더운 입김을 푹 푹 뿜어낼 때면
그의 애교스러운 몸짓을 떨쳐낼 수가 없었어
주인이 달라는 대로 값을 쳐주고
그 말을 당장 내 것으로 만들었지

그렇게 다시 한몽직통항로를 통해
강원도 고원지대 고성목장에 실려온 흑색말은
통통하게 살진 뱃구리에 힘이 넘쳐
쳐진 흙빛 살가죽 치렁하게 늘어뜨리며
떠오르는 아침햇덩이를 바라보며
묵언의 꼴을 볼 씰룩거리며 씹곤 하였는 데
영락없이 늙은 명상가의 표정이었지
고향에서 보던 것과 똑같이 찬란한 아침햇살에
마천루 높은 산정을 떠도는 흰 구름 아래
천막 사이 울려퍼지는 주인집 소년 마두금소리 듣는 양
윤기나는 갈색털은 푸르르 일어서며
다시 찾은 생의 기쁨에 부르르 떠는 것이었어
그렇게 춤추는 느릅나무 어린 잎새 사이
툭 튀어나온 엉덩이뼈를 옆으로 불룩거리며
주인인 나를 향하여 말없이 걸어오곤 하였지

이슬 맺힌 풀잎 사이를 유유히 거닐다가
다시 먼 하늘을 바라보는 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고향풍경이던가 .
아득하게 잊혀진 세계의 몽환 속으로
아무런 생각없이 막 빨려들어가는 너의 검은 눈동자,
가을대기 속으로 푹푹 뿜어내는 너의 더운 입김은
아마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대자연의 숨결이었기에
대자연의 감출 수 없는 매혹이었기에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는 주인의 눈빛과 말의 눈빛이
허공에서 천둥 번개를 마구 교환할 때면
우연히 이생에 다시 마주친 주인과 말은
서로에게 정해진 관계를 까마득히 잊곤 하였는 데
이때부터 만리장성 부근에서 함께 살던
그들의 기나 긴 전생 이야기는
가을날 오후 목장의 쓰러지는 풀잎 위로
한꺼번에 들이치는 햇살로 올올이 풀어지는 것이었어
고성 목장의 언덕, 행복한 숲그늘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