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김종순의 ´푸른 약속´ 외


<어둠과 밤에 관한 시 모음> 김종순의 ´푸른 약속´ 외

+ 푸른 약속

저녁 빛살들
들판 가득
안녕,
안녕,
날갯짓하며 떠나간다.

천천히 어둠 내려와
풀잎,
흔들리는 가슴 위에
솜이불이 된다.

꿈을 꾸렴.
무서움이
그리움이
푸른 약속으로 살아난단다.

산 넘어 가는 빛살들
풀잎 귓가에
메아리로 번져온다.
(김종순·아동문학가)
+ 고건 모르지요

어둠이
커다란 어둠이

꽃들을 재웠다고
큰소리치지만

꽃들은
자는 척
향기로 이야기 나누는 걸

어둠은
고건 모르지요.
(이화주·교육자이며 아동문학가)
+ 밤

누군가
어둠 이불 한 채를 펼친다

머리맡엔
아늑한 달 조명등 켜고

세상은
한 이불을 덮고 잠잔다.
(정갑숙·아동문학가, 1963-)
+ 전기 나간 밤

갑자기 퍽,
전기가 나갔다

텔레비전 보던 엄마, 아빠
화들짝 일어나고

음악 듣던 형도
방에서 나오고

꺼져 버린 컴퓨터 게임은
내 머리 속에서 윙윙대는데

모두들 합창을 한다
˝손전등 어디 있지?˝

손전등을 가운데 두고
온 가족이 동그랗게 모였다
(김유진·아동문학가)
+ 눈 내리는 밤

이렇게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이면
등불 밑의 나는 또 하나 다른
로댕의 사람이 되어 버린다.

―눈 덮인 아득한 마을이여!
포근한 숲 속을 나는 예쁜 산새들이여!
산토끼 잘 쫓는 내 동무들이여!
모두 잘들 있었느냐?

이 밤도 또
눈 내리는 창가에 나만 남겨두고
그리운 내 생각은 훨훨 날아
정든 내 고향집에 가 버렸다.
(강소천·아동문학가, 1915-1963)
+ 꿈나라

잠이 안 와요
두 눈이 말똥말똥
잠이 안 와요

밤이 너무 좋아요
깨어 있고 싶은데
잠이 오지 않는데

친구네 간 야옹이도
아직 안 왔는데

엄마는 왜 자꾸 자라고 하세요?
어서 어서 꿈나라로 가라고 하세요?

엄마 품에 가만히 안겨 있지만
그건 엄마가 좋아서예요

엄마 자장가
엄마 몰래 실눈 뜨고 듣고 있어요

꿈나라! 꿈나라!
가기 싫어요

꿈나라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나라야!
(이문자·아동문학가, )
+ 적요의 밤

적요의 밤
내 등이 가렵다
히말라야의 어느 설산에
눈사태가 나는가 보다

적요의 밤
귀가 가렵다
남태평양의 어느 무인도에
거센 파도가 이는가 보다

적요의 밤
잠이 오지 않는다
내 은하계의 어느 행성에
오색의 운석들이 떨어지고 있나 보다

적요의 밤
어디선가 밀려오는 향훈…
내가 떠나왔던 아득한 전생의 종루에서
누군가 지금 종을 울리고 있나 보다
(임보·시인, 1940-)
+ 어둠에 대하여

때로 어둠은 들뜬 세상도
가라앉혀 주곤 하지
이글대던 해 서산마루 넘어가고
천천히 노을이 물들면
모두들 돌아갈 고향 생각에 잠기지

그러나 어둠에 길들면
세상을 다시 보는
깊은 눈도 생기게 된다는데

내 가까이로 가라앉는 숨결
다소곳이 땅은 두 손 내밀어
힘겨웠던 날들 땀방울을 씻어주지

어둠은 하루치 빛을 키우는 시간
발 밑의 눅눅한 그림자
슬픈 죄와 고통일지라도
바다처럼 품어주는 가슴 같은 것
적적할 때 기대는 어깨 같은 것
(김행숙·시인, 1970-)
+ 어둠이 아직

얼마나 다행인가
눈에 보이는 별들이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둠을 뜯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별은 어둠의 문을 여는 손잡이
별은 어둠의 망토에 달린 단추
별은 어둠의 거미줄에 맺힌 밤이슬
별은 어둠의 상자에 새겨진 문양
별은 어둠의 웅덩이에 떠 있는 이파리
별은 어둠의 노래를 들려주는 입술
별들이 반짝이는 동안에도
눈꺼풀이 깜박이는 동안에도
어둠의 지느러미는 우리 곁을 스쳐 가지만
우리는 어둠을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지
뜨거운 어둠은 빠르게
차가운 어둠은 느리게 흘러간다지만
우리는 어둠의 온도와 속도도 느낄 수 없지
알 수 없기에 두렵고 달콤한 어둠,
아, 얼마나 다행인가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나희덕·시인, 1966-)
+ 하루가 끝나고

하루가 끝나고 어둠이
밤의 날개에서 내린다
독수리가 날다 흘린
깃털 하나 천천히 떨어지듯

마을의 불빛
비와 안개 속에
빛나는 걸 보노라니
알 수 없는 서글픔 휩싸와
내 영혼 그것을 감당할 수 없구나

서글픔과 그리움의 느낌
아픔이라고는 할 수 없고
안개와 비가 비슷하듯
그냥 슬픔과 비슷한 어떤 것

이리 와 내게 시를 읽어 주오
이 산란한 심정 달래고
낮의 온갖 상념 몰아내 줄
소박하고 감동적인 시를

옛 거장들의 시는 그만 두오
장엄한 시인들의 시도 그만 두오
그네의 아득한 걸음 소리
아직 시간의 통로에서 메아리치오
저들의 거창한 생각 듣노라면
마치 군대의 행진곡처럼
싸우고 또 싸우라는 것만 같소
허나 오늘밤 나는 휴식이 그립소

소박한 시인의 시를 읽어 주오
여름 구름에서 소나기 쏟아지듯
아니면 두 눈에 눈물이 고이듯
가슴에서 우러나온 노래를

힘들고 긴 낮을
평안 없는 밤들을 보냈으면서도
영혼 속에서 아름다운 가락의
음악을 들었던 시인의 노래를

그런 노래가
쉼 없는 근심의 맥박을
가라앉힐 수 있소
그리고 기도 다음에 오는
축복의 말처럼 들린다오

그러니 그 소중한 시집에서
당신이 고른 시를 읽어 주오
그리고 시인의 운율에 맞춰
당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오

그러면 밤은 음악으로 가득 차고
온 낮을 괴롭혔던 근심은
아랍인들이 천막을 거두고 떠나듯
조용히 조용히 떠나가리다
(롱펠로우·미국 시인, 1807-188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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