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8일 일요일

그리움에 문패를 달고

그리움에 문패를 달고


오늘은 당신 오시려나

괜스레 가슴이 울렁이고

내 마음은 한 꺼풀씩 옷을 벗는다
옷자락 끝에서 서성이던 눈길은

내 그림자보다 먼저 일어서

사립문으로 종종거리며 헛걸음 걷고 있다

너 보고싶었어

당신 다가올 때

무심틋 눈길 하늘로 돌리면

행여 조바심치는 내 맘 들키지는 않겠지…
한 번 안아보자

앙가슴 헤작일 때

철렁- 내려앉는 어지러움을 기대고

어뜩비뜩 주저앉는 시늉이라도 할까…
네 속살 느끼고 싶다

입술 포갤 땐

코가 걸치작거리네요

영화 장면처럼 한발 물러서야 해…

그러나 소슬하게 스쳐가던 바람만

사립문 밖에서 잠시 에돌다

배틀한 연분만 좇아 다니는

당신 그림자 소식만 전하고 갈 길을 재촉한다

그리고 하릴없는 마음만 들켜버린 나는

속절없이 태우던 내 애만 쓸어 담고 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그리워하면

기림받는 사람 몸엔 열꽃이 스멀거린다는데

당신은 그리 괴오든 날 잊어버리고
당신 눈맞춤도 돌려세우는

너 아닌 너에게로 발길을 돌리며

그렇게 기다렸어?

흰소리 흘리며 가슴으로 손을 올린다

이제 그리움에도

문패를 달아야 할 때가 되었다
내 그리움으로 몸이 스멀거리는 당신이

나 아닌 나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빨간 불을 켜고 문패를 달아야 한다

당신은 벌써 내 모습 잊었나요

백옥같다 칭찬하던 내 얼굴에 어리는 시름

눈물되어 한사코 쏟아지는데……

배꽃 한 가지에 찾아온 봄은

봄비를 불러들여 같이 울고 있는데……
玉容寂寞淚난干

梨花一枝春帶雨

당신 안아들일 길 없어 애달아

그리움을 불사르며 바람만 뒤따르고 있다

(후기)

- 앙가슴

두 젖 사이의 가슴
- 헤작이다/ 헤적이다

조금씩 들추거나 파서 헤치다
- 소슬하다

으스스 쓸쓸하다
마음이 춥고 외롭다

집집마다/ 등불을 돋우는 심사로/
남모르게 피어나는/ 그 이치가 실로 소슬하구나
(박재삼, ′아내의 화장에서′)
- 배틀하다

약간 배릿하고 감칠 맛이 있다
원래 ′맛′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말이나
당신이 내게 전하는 분위기에 꼭 들어맞는 표현이다

- 에돌다

바로 가지 못하고 멀리 돌거나 어떤 둘레를 빙빙 돌다

무엇으로 맺으랴/ 그대 나 동심결(同心結/
애도는 아지랑이 꽃/ 얽을 길도 없어라
(김소월, 蘇小小의 무덤′)

- 애

걱정에 싸인 마음 속
애간장
- 기리는

그리워하는

얼마나 기리운 고장이더뇨 여기여라 여기여라/
모진 명 죽지 않아서 옛나라를 걸어본다
(고은, ′대지의 비(碑)′)
- 괴오든

′사랑하던′의 고어
고이다, 괴다

사니 산가하여 살음에 조이는 마음/
괴오든 오누도 벙그러이 지내는 이 날/
이곳에 님을 뫼심이 다행이라 하더니
(이병기, ′추도(追悼)(1))
- 한시

長恨歌에 나오는 楊貴妃를 묘사한 정경으로 가장 애송되는 부분이다
사랑하는 님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다 이와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