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8일 수요일

외갓집 잔상

외갓집 잔상
노태웅
1
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그렇게 가고 싶던 외갓집
코를 꿴 생태 꾸러미 들고
외갓집 가는 길은 왜 그리 멀었는지

돌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를 건너
늙은 은행나무 서 있는 길을 따라 가면
산골 깊은 곳에 초가의 외갓집
그곳에는 언제나 사랑만 아는
외할머니가 계셨다

외할머니의 사랑 잊을 수가 없는데
내 나이 고희(古稀))를 넘긴 지금
외할머니의 정이 더욱 그리운 것은
사랑 많으신 외할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못한 철없던 외손자의
때늦은 후회 때문일까?
외손자를 귀여워하느니 방앗공이를 귀여워하라
나를 두고 말한 속담 같다
2
나는 외가에서 농촌을 알았다
새벽 똥장군을 지고 밭에 가서 거름 주고
쇠죽 쑤고, 나무하고, 뽕 따고, 꼴 베고, 논밭 매고.
농촌의 바쁜 손길도 알았다

겨울이면 변소 가기 무섭다고
방문 열면 놓여 있는 오줌통 하나
그곳에다 일을 보고 그래도 무서워
솜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추운 겨울 청솔가지 연기 가득한
외갓집 사랑방 화로에서는 군고구마 익어가고
짓이긴 고욤 단지 속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지금은 모두 떠난 그곳이지만
외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할머니하고 달려가고 싶은 외갓집이다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외갓집의 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