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3일 일요일

소나기가 오시네

태양은 서러운 뒤 꼭지도 없이
구름 위에서 왕관처럼 도도하다
밤 별들은 촘촘히 보석 가루를 뿌렸다.

땡볕에 달팽이로 오므린 할머니 등으로
후두둑 치대는 소나기는
생의 이랑을 두드리는 휴식의 소나타

토실토실 익어가는 토란잎으로
하늘을 가리면
산딸기 가시 밑을 지나던
굵은 배추벌레도 비를 긋고
고구마 밭을 날으던
흰 나비도 날개를 접는다.

삼베적삼 송송 난 구멍에
황톳물은 스미고
굵은 주름살에
또 하나의 무늬를 수놓는다.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았던 소나기는
변방에 피어나는 소금 꽃
간간이 유년의 창을 건드린다

산 아래 반달로 웅크린 집으로
갈 수 없는
길 잃은 소나기가 오시면

머언 바다로 가는
연락선 뱃고동 소리는 우렁차고
풀 냄새인지 생의 질긴 냄새인지
포근하게 묻혀온
할머니 등걸에 업혀
황홀한 여름잠을
깨지 않아도 좋을 긴 잠을
비가 그칠 때 까지
내내 자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