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3일 수요일

가네코 미스즈의 ´모래 왕국´ 외


<모래에 관한 시 모음> 가네코 미스즈의 ´모래 왕국´ 외

+ 모래 왕국

난 지금
모래 나라의 임금님입니다.

산도, 골짜기도, 들판도, 강도
마음대로 바꾸어 갑니다.

옛날얘기 속 임금님이라도
자기 나라 산과 강을
이렇게 바꿀 수는 없겠지요.

난 지금
정말로 위대한 임금님입니다.
(가네코 미스즈·일본의 천재 동요시인, 1903-1930)
+ 모래알의 크기

티끌 하나는
그 크기가 얼마일까요?

눈에 들어가면
모래알보다 더 크지요.

모래알 하나는
그 크기가 얼마일까요?

밥 속에 있으면
바윗돌보다 더 크지요.
(민현숙·아동문학가)
+ 모래밥

날마다 쉴 틈 없이
모래를 일어 대는 파도

바다는 누구를 위해
밥을 지으려는 걸까요

모래알 말갛게 씻어
바다가 지어 놓은 모래밥

갈매기가 콕콕콕 쪼아 보고
달랑게가 쓰윽쓰윽 헤쳐 보고
(민현숙·아동문학가)
+ 모래 한 알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눈에 한 번 들어가 봐
울고불고 할 거야.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밥숟갈에 한 번 들어가면
딱! 아이구 아파! 할 거야.

모래알들이 작다고 하지 마
레미콘 시멘트에 섞이면
아파트 빌딩으로 변할 거야.
(정용원·아동문학가)
+ 모래

모래가 되어본 자만이
낙타가 될 수 있다
낙타가 되어본 자만이
사막이 될 수 있다
사막이 되어본 자만이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이 되어본 자만이
모래가 될 수 있다
(정호승·시인, 1950-)
+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아동문학가, 1946-2001)
+ 무구의 노래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위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윌리엄 브레이크·영국 시인, 1757-1827)
+ 모래알

너무나 작은 우리는
모여 있어도
하나가 될 수 없는
하나 하나 각각이다

아무리 단단하게 뭉치려 해도
뭉칠 수는 없지만
함께 모여 있다

우리는 서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하나 하나 마음대로 흩어져 버리면
우리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바닷가에서

오늘은 흰 모래의 마음으로
바닷가를 나왔습니다.
밀려오는 파도가 내게 말을 건넵니다

´엄마 보고 싶은 마음
내가 대신 울어 줄까?´
´응, 고마워´

하얀 갈매기 한 마리
순한 눈길로
나를 바라봅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명사십리

우네,
천리 길 달려온 파도
가슴 시퍼렇게 멍들어서 우네
눈앞에 청산靑山 두고
청산에 가 닿지 못하는 세월
울모래등 기어서 기어서 넘으면
부서지고 부서진 마음
그 푸르름에 가슴 적실까
우네,
십리 가득 펼쳐진 은빛 모래밭
만파로 달려와 부서지는 파도들
가슴 시퍼렇게 멍들어 우네
(김신용·시인, 1945-)
+ 모래알 유희

네가 벗어던진 물결이
오늘 내 발목에 와 찰랑거린다

선생님, 저예요,
저는요, 배를, 너무, 타고 싶었어요,
항해사가 되어, 먼, 아주 먼, 바다에 나가,
영영,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오그라든, 왼손 때문에,
항해사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손이, 다시 펴질 수도, 없잖아요,
기억나세요, 제가 늘,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거,
그래도 사람들은, 한눈에, 알아차렸죠,
제 손이, 다시 펴질 수, 없다는 걸,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제 손을, 가만히, 꺼내어 잡아주셨지요,
선생님, 죄송해요, 인사도 못, 드리고 와서,
그때, 복도에서, 만났을 때,
먼, 길, 떠난다는, 말이라도 전할 걸,
그래도, 바다에 오길, 잘, 했어요,
붉은 흙 대신, 푸른, 물이불을 덮으니까,
꼭, 요람 속 같아요, 그러니 제 걱정, 마세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던, 세상이,
여기서는 그냥, 출렁거려요, 잡을 필요도, 없어요,
선생님, 제가, 보이세요,
유리도, 깨질 때는, 푸른, 빛을, 띤다잖아요,
부서지고, 부서져서, 나중엔,
저, 모래알들처럼, 작고, 투명해질, 거예요,

흰 물거품을 두 손으로 길어 올렸지만
손 안에 남은 것은
한 줌의 모래

아, 이 모래알이 저 모래알에게 갈 수 없다니!
(나희덕·시인, 1966-)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송찬호의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