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에 바짝 붙어 선
나무에 감 몇 개가
꽁꽁 얼은 채로 매달려 있다
수상하다 저 상형의 글귀
무슨 억한 심정 있길래
서첩書帖으로 엮어
해 넘겨가며 보여주는 것일까
여름의 폭우도 겨울의 폭설도
붉게 물든 육신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못하였네
독하다, 독해 저 생이,
광풍 같은 시절을 맞이해
제 몸을 얼렸다가 녹혔다가
문풍지로 스며드는 햇살에
마음 열었다가 닫았다가
한 끼 얻어먹겠다고
고개 숙이지 않겠다고
오늘 하루도 굶겠다는 것이다
그냥 툭 떨어져 같이 뒹군다고
누가 무슨 소리 할까마는
한 획씩 꼿꼿하게 써내려간 글이
나뭇가지에 여태 걸려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목숨 더욱 단단하게 쥐고 있는
저 명필名筆이
비수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