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겨울 강을 지났다.
작은 물오리들이 떠 있는 저녁 강이다.
길들여진 새는 낯선 비행을 떠나지 않는다.
나의 방문지는 춥지도 않았고
쌓인 눈도 없이 단조로웠다.
차창으로 멀리 보이는 것들은 온순했다.
갈등도 불화도 없이
낮은 지붕아래 몸을 웅크리고
다만 겨울나기에 든 작은 짐승들처럼
그늘진 잔설위로 융성했던 시절은 가고
숲이 강건한 뼈대들을 내보이고 있다.
골진 산자락에 남아있는 눈들은 쓸쓸하다.
책갈피에서 쓰다 만 엽서가 떨어진다.
나약한 문장들에 대한 혐오가 밀려온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했건만
언제나 자신을 황량한 곳으로만
내 몰고 싶어하는 나는 누구인가.
예전에도 지금도 삶을 불평한
불온한 태생에게
길 위에서 떠올린 집은 한없이 관대하다.
나는 누구에게든 관대했던 적이 있었던가.
삶은 내게 대체로 우호적이었는지 모른다.
무엇을 탓하기엔 너무 나이를 먹어버렸다.
어쩌면 신은 내 운명에 단 한번도
간섭한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길 위엔 내가 선택한 발자국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