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4일 화요일

편지

아버지의, 어머니의
침 발라 봉인된 내 몸이
지상에 잠시 보관된 편지 아닌가
입 속으로 꾸역꾸역 들이밀었던
밥 같은 것들
밑구멍으로 줄줄 흘러내렸던
똥 같은 것들 모두
내가 보낸 편지 였으니
반 세기 다 되도록 살아온
生의 글자 빼곡하게 쓰여 있어서
원하는 시간에 부쳐준다고
저 두툼한 편지에 옷을 입혀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산골의
노란 우체통에 보낸다
시간도 멈추어선
저 어두컴컴한 몸속에 있다가
내일인지 모레인지
내년인지 이 다음 목숨인지
언젠가 문득 나를 받아서
읽어 보고 싶은 날
내 손에 놓여진 나를 읽는다
한 여인에게 사랑고백을 했다던가
한 시대에게 고뇌를 발설했다던가
꽃 피어서 웃었다던가
열매 떨어져서 눈물을 흘렸다던가
내가 쓴 편지가 우체통에 가득 차
더 이상 받을 수가 없으면
햇살 따스한 날 봉분에 기대어
나를 꺼내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