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8일 금요일

그냥 걷고 싶을 때가 있다[이태수]



그냥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지은이 : 이태수

그냥 걷고 싶을 때가 있다.
불볕을 이고 찐득거리는 아스팔트길을 지나
푸성귀들이 아무렇게나 무성한
들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가위눌리고, 끝없이
악몽에 시달리는 시간을 빠져나와
발길 닿는 데로 아무렇게나
시간을 문지르고 싶을 때가 있다.

푸성귀들처럼 고개 쳐드는 시름들을
더러는 물 위에 띄우고,
바람에 날리거나 뜬구름에 실으며,
너를 잊기로 하고, 내 마음의 파도도 재우고
들길의 푸성귀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뜨거운 햇발을 받아들이며
언제나 가슴을 열고 있는
이 벌판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어제도, 오늘도, 어쩌면 내일도

길이 너무 많아 길은 보이지 않고
길이 안 보이므로 더듬거리는
그런 목마름도 벗어던지고,
팔을 뻗고 발을 구르는
이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뛰어
아무렇게나 고함지르며
길 위에 버려져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또 다른 하늘이 보일 때까지,
영영, 하늘이 캄캄해져버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