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9일 일요일

그건 내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내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무심코 스치던 당신의 눈과 마주침은

내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당신에게 바친 사랑 고백도

전혀 내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당신에게 그저 같이 가자 한 언약 또한

맹세컨대 내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날 홀로 남겨두고 당신이 돌아 선 건

정녕코 당신 뜻은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는 신(神)이 펼쳐놓은 무대에서 춤추다

예정된 시각 예정된 자리에서 헤어져야 하는

그저 스쳐 가는 타인들이었습니다
무대 위의 불이 꺼지면 서로의 마음 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떠나야 하는 그저 그런 우리였을 뿐입니다

그래
당신이 떠나면서 저며놓은 사랑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쓰러져 사그라지던 나는
무대 커튼이 내려질 때면 여느 때처럼 벌떡 일어나

당신에게 씩- 미소를 보내며

옷에 묻은 당신의 흔적을 애써 털어내고
지나가듯 던지는 무심한 몇 마디만

내일을 약속하며 우리 사이를 떠돕니다
그리고 내일은 또 다른 당신을 만나

신이 읊조리는 시에 따라 배역을 맡고 사랑을 속삭이다

또 헤어집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대가 내려지고 당신과 헤어지고 나서도

불현듯 당신 모습을 또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속삭이던 사랑의 밀어(蜜語)는

가슴 속에서 웅얼웅얼 머리를 내밀고

미처 털려나지 못한 채 옷자락에 남아 있던 당신의 몸 냄새는

내 몸을 휘감으며 억제할 수 없는 열정(劣情)을 불러들입니다

그래 나는 되돌아섰습니다
내일 다시 오르는 무대에는

허사비처럼 나를 춤추게 하던 신(神)이 읊조리는 시는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과의 눈맞춤 사랑고백

그저 같이 가고 싶어요 같이 가자는 언약은

당신께 바치는 내 영혼의 울림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오세요 당신

나의 침실로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무대가 내려지면 떠나는 당신은 아닙니다
당신은 내 사랑하는 당신

우리가 몸을 뉘일 동굴에

사랑의 부활을 아로새길

성모(聖母) 내 마리아입니다


(후기)
님과 사랑하는 것이 신의 예정(豫定)인가
그리고 사랑하는 님이 떠나는 것 또한 신의 예정(豫定)인가
인간으로서 가장 신에게 반기(叛起)를 들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님과 헤어지면서 절망하는 순간일 것이다
이 시는 님과 헤어지면서 절망에 빠졌던
모든 분들을 생각하며 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