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9일 일요일

벌레

폭우도 폭염도 끝났다고
벌레들이 설치고 다닌다
은밀한 곳에
흉칙스런 모습 숨기지도 않고
밤낮으로 기어 다니는 것이
이제야 제 물을 만났다
비어있는 자리라면
마당도 길가도 가리지 않고
구불구불 기어가는 것들로 천지다
문 닫아도 소용 없는 것이
내가 벌레를 키웠다
나를 갉아 먹으라고 먹이로 주었다
내가 털 많이 난 多足의 애벌레다
아무 데나 몸 드러내서
비명 지르게 하려는
무슨 형벌을 받았는지
저것이 고운 날개 펼치고 날아갈
나방의 前身이란다
내가 멀리 날아갈 꿈만 꾸었나
내가 손바닥 만한 희망만 뱉어 놓았나
날개 얻지 못하고
절망의 바닥으로 추락한 이무기가
잠들고 있는 나의 귀로
코로 기어들어 오고 있다
깊숙히 심어놓은 오장육부 파헤쳐 먹고
빈 껍데기만 남겨놓았다
내가 한 마리 거대한 벌레라서
세상을 조금 갉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