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0일 월요일

자아(自我) -허영미-

내 가슴에 보리가 눕는다
검푸른 슬픔을 입안 가득 물고서
지독히도 모질고 무거운 발 밑에서
외마디 비명조차 삼키며
오늘은 온몸 밟히며 비를 맞는다
눈비 내리는 계절이 지나고 나면
삭풍조차도 고마울 이름으로 기억되어
아픔을 먹어야 더 여물어 가는,
지금은
땅 뙈기도 작은 산비탈 자갈밭에
여름날 누런 결실을 꿈꾸는,
결코 꺾이지도, 죽지도 않을 보리가 산다
눈물을 머금고 하늘같은 자존심 하나
날 곧게 세우고
다시 삶의 고갯길을 오른다
먼 들밭에 알알이 꿈을 단
싯누런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